뇌병변 장애 51세 송은희씨… 10㎡ 지하 셋방에 갇혀 빼앗긴 아들 찾는 꿈만
입력 2010-04-19 22:23
낡은 TV, 해진 이불, 칠이 벗겨진 작은 상, 키 작은 옷걸이, 그리고 커다란 눈으로 웃고 있는 어린 남자 아이의 오래된 사진. 뇌병변 2급 장애를 앓고 있는 송은희(51·여)씨의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10㎡ 남짓한 지하 셋방 단출한 살림은 그녀의 삶과 닮았다.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어 늘 구부리고 앉아 주어진 것들에 감지덕지했던, 작고 낮은 삶.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일곱 살 난 아들을 빼앗겼지만 그리워하는 것만이 송씨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벚꽃이 흐드러진 지난 16일, 송씨의 하루는 여느 때처럼 오전 6시에 시작됐다. 해가 길어졌다지만 그녀의 방에는 볕이 들지 않는다. 50년 동안 다리를 대신해 준 두 팔로 어두운 방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갔다. 휠체어에 앉아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TV를 마주보고 밥을 먹은 지 오래다. 벚꽃 구경도 가고 싶지만 혼자서는 밖에 나갈 수 없다.
송씨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때부터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이제는 아예 움직여지지 않는다. 장애가 있었고 가난했지만 송씨는 서울의 한 여고를 졸업했다. 맏딸에게 공부만큼은 제대로 시켜주고 싶어 했던 부모 덕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못 걷는 송씨를 보살피느라 여동생은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송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 10명 중 8명은 가족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은 대부분 생활고를 겪고 있다. 부모도 여동생도 사는 게 힘들어 자주 보지 못한다.
젊은 시절에는 행복했던 때도 많았다. 여고시절 반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불렀던 송씨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백일몽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했다. 성격이 활달해 친구도 많았다. 22세에 결혼도 했다.
고운 얼굴에 밝은 성격의 송씨에게 반한 후배와 아들을 낳고 결혼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남편은 외도를 했고, 이혼을 요구했다. 송씨의 남편은 “(아들에게) 엄마가 장애인인 것이 좋겠느냐”며 친권마저 가져갔다. 남편 몰래 연락하던 아들은 중3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
매일 송씨는 아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하지만 집 밖에 홀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집 앞 좁은 계단은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다. 누군가 업어줘 문을 나서더라도 송씨의 수동 휠체어로는 거리를 다니기 힘들다.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30여만원은 병원비, 약값, 월세, 생활비로도 부족하다. 전동 휠체어를 살 수 없다. 정부로부터 전동 휠체어를 받으려면 팔마저 못 쓰게 돼야 지원 자격이 된다. 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언제나 허덕였다.
점심 무렵 송씨의 어두운 방에 반가운 전화벨이 울렸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였다. 송씨의 목소리가 좁은 방에 울렸다. “곧 어깨 수술을 해야 돼. 수술하지 않으면 팔도 못 쓰게 될 거래. 장애인에게 혜택이 늘고 있다고들 하는데, 나한테 사는 게 쉬운 날이 있었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보고 싶다, 친구야.”
성남=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