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시장 2위 ‘에이서’- LCD TV 美 점유율 1위 ‘비지오’ 공통점은?… 공장 없이 세계시장 지배
입력 2010-04-19 18:25
대만 PC 업체 ‘에이서’와 대만계 미국인이 세운 TV 회사 ‘비지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에이서는 델을 제치고 세계 PC 시장 2위에 올랐고, 비지오는 미국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두 회사는 생산과 유통을 외부 업체에 맡겨 비용을 줄이는 글로벌 네트워크형 비즈니스모델(GNB)의 성공 사례다. 수직계열형 사업모델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업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1분기 세계 PC 시장에서 에이서가 14.2%의 점유율로 HP(18.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19일 밝혔다. 다른 시장조사업체 IDC의 조사에서도 에이서는 13.6%를 점유, 델(13.3%)을 누르고 HP(19.7%)를 추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서가 급부상한 원동력은 경쟁사가 쫓아가기 힘든 가격경쟁력이다. 1990년대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컴퓨터를 만들던 에이서는 2000년대 초 제조부문을 떼어내는 대결단을 내렸다. 공장을 포기하고 브랜드 판매회사로 변신한 것. 본사는 설계와 디자인, 마케팅에 주력하고 생산은 분사한 자회사와 중국 업체에 맡겨 원가를 최소화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HP와 델은 제품 1대당 마진이 4%가 넘지만 에이서는 2%대에 불과하다.
대만 회사는 아니지만 대만과 밀접한 TV 업체 비지오는 미국 시장에서 순식간에 3강 업체로 떠올랐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LCD TV 시장에서 비지오의 수량 기준 점유율은 18.7%로 삼성전자(17.7%)를 앞질렀다. 매출 기준 점유율로는 삼성전자에 뒤지지만 성장세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비지오의 무기도 경쟁사보다 20∼30%나 싼 가격이다. 대만계 미국인 윌리엄 왕이 2002년 설립한 비지오는 본사가 기획, 디자인, 콜센터만 맡고 나머지는 모두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제조부문이 없기 때문에 본사 직원은 160여명에 불과하다. 한국과 대만 업체로부터 공급받은 부품을 암트란 등 대만 위탁생산업체에 보내 조립한다. 제품 유통도 자체 판매망 없이 코스트코와 같은 할인점을 활용한다.
에이서와 비지오는 공장이 없어 제조업체라기보다 서비스 업체, 무역회사에 가깝다. 핵심 역량만 남기고 나머지를 외부 전문기업에 아웃소싱하는 GNB의 전형적인 사례다. GNB는 네트워크만 잘 설계한다면 생산비용을 대폭 줄이고 사업운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에이서와 비지오에 앞서 애플과 구글 등이 GNB를 통해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강자로 부상했다.
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GNB 확산을 간과하고 수직계열화를 고수했던 일본 전자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일본과 유사하게 사업모델이 제조부문 위주인 한국 기업들도 GNB에 적극 대응하지 못할 경우 시장 주도권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