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괴상한 동반자

입력 2010-04-19 17:50


미국 연구소 프리덤 포럼은 군과 언론의 관계를 ‘괴상한 동반자’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미국이 걸프전을 끝내고 난 뒤인 1995년에 펴낸 ‘America’s Team―The odd couple(미국 팀―괴상한 동반자)’라는 연구보고서에서다. 군과 언론은 한쪽은 숨기려 하고 다른 쪽은 알아내려는 성향으로 늘 날카로운 대립을 하지만 헤어질 수 없는 기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LA타임스 국방부 출입기자 멜리사 힐리는 이 보고서에서 국방부를 출입할 때 받은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군인들은 나를 보면 마치 불발탄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속으로 ‘물러나라, 가까이 가지 마라, 폭발물 처리반을 불러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힐리의 경험은 이제 옛날 일이다. 미 국방부로선 언론이 더 이상 ‘귀찮은 추적자’인 것만은 아니다.

1994년 9월 미국은 아이티의 군사지도자 라울 세드라스 제거 작전을 계획했다. 라울 세드라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당선된 아이티 대통령을 군사쿠데타로 몰아낸 인물이었다. 국방부는 이 작전을 시작하기 며칠 전 CNN의 빌 헤드라인을 비롯한 주요 방송국 임원들, 언론사 부사장들을 초청했다. 19일 자정 1분전에 실시되는 작전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아이티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 비밀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식으로 작전을 전개하느냐를 보도하는 것은 세계적인 특종이 될 수도 있었다. 국방부가 선제적으로 작전계획을 알려주기로 한 것은 대규모 군부대 이동을 언론이 알아챌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국익’과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했고 언론사 간부들은 비보도를 약속했다. 그러나 공정부대의 아이티 낙하시작은 보도하겠다고 했고 국방부가 요구한 침공 1시간 동안 언론의 도심접근제한은 위험하더라도 취재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합참의장 존 샬리카쉬빌리는 “우리의 요구에 언론은 대부분 동의했지만 과다한 군의 요구사항은 제지했다. 나는 왜 좀 더 일찍 언론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를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전 시 교묘하게 언론을 통제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미 국방부는 당시 공식브리핑을 통해 최첨단 무기체계의 영상기술을 기반으로 생생하게 전황을 소개하고 현장비디오, 사진을 제공해 신뢰받는 전쟁 정보원으로 인정받았다. 지금도 군장성들, 국방부 관리들은 자주 언론과 접촉하며 국방정책을 설명한다.

기자들을 좋아해서일까. 아니다. 사사건건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해대는 까탈스런 기자들을 반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08년 5월 미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한 국방부 고위관리는 “언론이 함께하기 힘든 괴상한 동반자인 것은 변함없다”며 “당신을 만나는 것도 편하지는 않다”며 짓궂게 웃기도 했다.

요즘 군은 해군 천안함 침몰사건 보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사상 초유의 사건을 수습하는 데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언론은 이런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거의 매일 뭇매를 안기고 있다는 불평이다. 장병들을 잃은 아픔은 가족들 못지않다. 또 누구보다도 사건 원인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늑장을 부리고 감추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군은 왜 언론이, 또 국민이 군의 설명을 믿지 못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군은 어느 공식 조직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돼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인정된 무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군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항보다는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사항만 공개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뢰회복은 군이 천안함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사안 가운데 하나다. 그래야 괴상한 동반자의 까탈스러움도 완화될 것 같다.

최현수 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