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창세기 첫 절만 믿어도…

입력 2010-04-19 21:23


창세기 1장 1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성경의 첫 장 첫 절의 시작만 정확히 믿어도, 반은 승리한 것과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성경의 출발이자 대전제입니다. 성경을 열면 창조자 하나님,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것을 믿어야 다음 절로 넘어가면서 신앙의 길을 진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세상을, 에덴으로 만드신 말씀의 능력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혼돈 공허 흑암으로 엉망이 된 나도, 창조의 씨앗, 에덴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 행복한 미래를 소망하게 됩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콩 하나로 콩나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콩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은 콩이지만 시루에 심으면 콩나물, 땅에 심으면 콩나무가 됩니다. 콩나물은 콩 하나에 콩나물 한 줄기만 나올 뿐이지만, 콩나무는 수십 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심겨진 콩나무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가 기적의 씨앗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너무 약하고 장애가 많아 길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당구에 쿠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수들 눈에는 벽을 때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고수는 벽이 아니라 길로 봅니다. 신앙의 하수는 벽만 보지만, 신앙의 고수는 벽 뒤의 하나님을 봅니다.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 약속하신 그 높은 길과 높은 생각을 찾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약성경에서는 농부로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 하나님을 농부, 우리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인생의 농부로 모셔 들이는 겁니다. 농부는 때를 맞추어 밭을 기경하고, 역겨운 퇴비와 소독약도 뿌리고, 모판에서 논바닥으로 옮깁니다. 씨앗들, 가지들에게는 숨 막히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농부가 주는 그 어느 하나도 해로운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당장은 역겹고, 독하고, 원치 않는 곳에 옮겨져서 힘들지만, 결국은 열매를 풍성케 하는 보약입니다. 지금의 고통을 보약으로 알고, “낙심하지 말고,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갈 6:9)을 기대하십시다.

주님이 로마 황제 가이사와 헤롯의 아들 빌립을 합쳐 세운,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겁니다.

주님이 얼마나 기뻤던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여지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천국 열쇠를 주시면서,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교회는 가이사랴 빌립보 같은 세상 권세와 명예와 부귀 앞에서도 창세기 1장 1절을 천명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곳에 세상을 이기는 천국열쇠의 능력이 있습니다.

청주 한길교회 신현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