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2) 손 제독 국방장관 취임 후 군목제도 신설

입력 2010-04-19 17:33


“이제 해군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나 보오.”



1953년 6월 44세에 남편 손원일 제독은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몇 차례 대통령의 권면에도 “아직 해군에서 할 일이 많다”며 고사했었다. 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해군을 떠나던 날, 그는 아무 말 없이 군복을 벗었다. ‘해군의 아버지’에서 이제 전 군의 아버지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지게 됐다. 남북 간에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다시는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군사력을 더욱 확장할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남편은 전쟁을 겪으면서 정신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깨달았다. 그는 “전쟁은 확실히 총으로 싸우지만 마지막 승리는 강한 정신력으로 얻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군목제도의 필요성을 실감한 그는 해군 내에 ‘정훈’을 두고 교화과를 설치해 군목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국방장관에 오른 뒤 대통령에게 군목제도를 건의했고, 전 군에서 바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군목제도는 군대 내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증거였다.

전쟁 직후라 국방장관의 집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남편이 바빠 찾아오는 사람을 일일이 만날 수 없자, 아내인 내가 직접 나섰다. 사연도 참 다양했다.

“온통 폐허가 되어버렸어요. 제 집을 찾아주세요” “돈을 벌어야 하니 취직을 시켜주세요” “병원비가 부족합니다. 도와주세요” “먹을 것이 없으니 돈을 좀 주십시오”….

처음 3개월간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더 높은 분들을 찾아가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끝없이 계속되는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다보니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점차 짜증이 났다.

어느 날 부인회에서 급히 나를 찾았다. 한 말단 사병이 행패를 부리고 민간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병에게 이름과 군대에 들어온 지 몇 달 되었는지, 또 몇 살인지를 물어보았다. 사병은 20세이고, 군인으로는 6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엄하게 물었다.

“20년 동안 가정에서 잘 키워주셨으면 군대에서도 좋은 군인으로서 착실하게 지낼 수 있지 않습니까?”

단호한 어조로 마치 상사가 얘기하듯, 군대의 책임을 다하라고 강조했다. 그의 반응이 누그러졌고 이내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게 정리된 것 같으나 내 속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저런 일로 불려나간 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럴 때마다 이런 식으로 딱딱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게 마음 아팠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여보, 나는 국방장관 아내 될 자격이 없나 봐요. 우리 그 일 그만둡시다.”

그러자 남편은 바스락거리며 주머니에서 봉투 여덟 장을 꺼내보였다.

“내가 벌써 여덟 번 사표를 썼다오. 그걸 이렇게 가지고 다닙니다. 장관이 되기도 어렵지만, 그만두는 것은 더 어렵더군요. 우리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남편의 말에 이내 눈물이 났다. 그날 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저 소원이 하나 있어요. 제가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성내지 않게 해주세요.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게 해주세요.”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