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부채 현황에 상환능력까지 조사… 가계살림 건전성 국가가 살핀다

입력 2010-04-18 18:00


통계청 ‘가계금융조사’ 실시

서울 방배동에 사는 서모(53)씨는 최근 가계 빚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해 초 아내의 성화에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팔고 43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느라 무리하게 융통한 주택담보대출 3억원을 갚아나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딸과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의 등록금으로만 벌써 2000만원 정도 빚을 졌다. 5년 뒤 은퇴하는 서씨는 연봉이 6000만원 정도인데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현재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서씨처럼 가계부채로 인한 부담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급격한 가계부채 증가가 국가경제 운용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자 정부가 올해부터 매년 가계 살림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통계청은 19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전국 1만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2010 가계금융조사’를 실시한다고 18일 밝혔다. 가계의 예금통장, 대출계약서를 토대로 유형별 실물 및 금융자산,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부채와 이자 등은 물론 가구주 직업, 소득, 부채상환 능력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담보대출) 사태에서 보듯 가계부채가 언제든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가계부채는 가계대출과 신용판매(카드사용액)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구전략이 본격화돼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734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인부채로 환산하면 1인당 1754만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4인 가족의 경우 원금을 제외하고 1년간 이자로 나가는 돈만 평균 200만원이 넘는다.

정부는 최근 들어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집중 부각되자 현재 집계되는 한국은행의 금융자산과 부채에 대한 통계만으론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의 대출실적 등을 바탕으로 낸 집계라 가구단위의 가계대출 부실화 가능성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가계금융조사는 전체 가계대출 규모가 똑같이 증가해도, 대출받은 가구들이 자산, 소득, 연령, 직업 등에서 어떤 특성을 가졌느냐, 대출이 가구들 간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에 따라 가계대출의 부실화 가능성 정도가 다름을 보여준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또 매년 같은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정부 정책이 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분석할 수 있다.

가계 부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 등 다른 경제주체의 금융부채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개인과 기업, 정부의 이자부 금융부채(전액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부채)는 2447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5년 새 1000조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금융부채 증가속도는 기업, 정부, 개인 순으로 빨랐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한 탓에 국가채무가 증가했으며, 개인은 부동산 담보대출, 기업은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 확장이 부채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특히 공기업 부채는 향후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