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피플-노희영 오리온 부사장] “초코파이처럼 오랫동안 생명력 지닌 브랜드 만들고 싶어”

입력 2010-04-18 19:06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노희영(47) 오리온 부사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1989년 서울 청담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스타 파스타’를 열며 스파게티 대신 파스타라는 용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97년 국내 최초 퓨전 레스토랑 ‘궁’을 오픈하면서 퓨전 음식 붐을 일으켰다. 2000년대 들어선 ‘호면당’ ‘마켓오’ ‘느리게 걷기’ 등을 기획하거나 운영하며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 그가 돌연 회사원이 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한마디로 “노희영이?”였다. 2007년 오리온 외식계열사 롸이즈온 이사로 스카우트된 그는 지난 2월 임원 인사에서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3대 전략사업 중 하나인 ‘N(Natural)★ORION’ 부문을 총괄하는 자리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 본사에서 만난 노 부사장은 “초코파이나 새우깡처럼 몇십년이 지나도 생명력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내가 가진 창의력과 기업이 가진 조직력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여러 기업과 접촉을 했는데 오리온을 택한 건 의사결정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부사장을 스카우트한 이화경 사장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워낙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인 데다 ‘조직생활 못하는 사람이다’ ‘몸값 올려 다른 곳으로 갈 테니 정 줄 필요 없다’는 등 말이 많았다. 이 사장은 노 부사장이 회사에 들어온 지 1년가량 지났을 때 처음 전화를 걸었다. 식사자리에서 조그만 지갑을 선물하면서 “조직에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노 부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과자를 만들고 싶습니다”고 답했다. 이 사장은 그 자리에서 제과부문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프레젠테이션 일정을 잡아줬다.

노 부사장은 “처음 제가 과자를 한다고 했을 때 사장님이 눈여겨본 건 ‘열정’과 ‘과자에 대한 무지’였다고 하더라고요. 내 진정성을 알아준 사람이 바로 이화경 사장님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2008년 12월 ‘0% 합성첨가물, 자연이 만든 순수한 과자’를 표방한 마켓오가 출시됐다. 마켓오는 출시 1년 만에 당초 목표의 5배에 달하는 5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노 부사장은 ‘맛’과 ‘멋’에 있어선 무서울 정도로 까다로운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부모님, 오빠, 여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먹는 것과 옷에 목숨 건 사람들이었어요.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데리고 나가 매번 새로운 장소에서 외식을 했고 직접 요리도 잘하셨어요. 탁자 같은 데 흠이 나면 똑같은 색깔을 찾아 칠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컬러에 대해 민감하셨고요. 그런 아버지를 제가 쏙 빼닮은 거죠.”

어머니의 교육열도 남달랐다. ‘너는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며 70년대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교시절 미국 유학을 보냈다. 수학에 재능이 있던 노 부사장은 미국 남가주대 의예과에 들어갔지만 소아과에서 인턴을 하면서 ‘우는 아이 보는 데 지쳐’ 의사의 길을 접었다. 그러다 85년 세계적인 명문 디자인학교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패션에 소질이 있다고 자부했지만 학습되고 정형화된 창의력으로는 미국 학생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노 부사장은 일찌감치 학교 명성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당돌한 생각을 했다.

‘이거다’ 싶은 영감을 준 건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유명 디자이너 도나 캐런이었다. 캐런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며 “내 의상의 단추와 목걸이는 로버트 리 모리스가 만듭니다”라고 공언했다. 88년 5월 졸업을 앞두고 시장조사차 귀국한 노 부사장은 유명 디자이너와 접촉해 단추 디자인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90년대 중반까지 고급 의상실용 단추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딱 붙는 청바지에 검정색 티셔츠, 줄무늬 재킷을 입고 검정 뿔테를 쓴 노 부사장은 ‘건방지다’는 오해를 살 만큼 말투나 단어선택에 거침이 없었다. 인터뷰 도중에 궁금한 사항은 아이폰으로 즉시 검색해 보기도 했다.

“사장님이 원하는 건 우리 회사를 뒤엎는 거예요. 여러 가지 면에서 적응하기 힘든 나를 부사장으로 앉힌 건 나를 통해 당신이 사랑하는 오리온이라는 조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거거든요.”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