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은행세

입력 2010-04-18 19:30

요즘 선진국 금융당국의 관심은 온통 이번 같은 금융위기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금융당국이 겨냥하는 핵심 타깃은 ‘대형 금융기관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신화이다.

이번 금융위기 역시 고수익을 좇는 대형 투자은행과 보험사의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로 촉발됐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경제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여파 때문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 이들을 구제할 수밖에 없었다.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의 주요 의제인 은행세(bank levy)도 금융기관의 이러한 모럴 해저드(기강해이)를 바로잡기 위한 처방이다. 은행세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처음 제안하면서 ‘오바마세’라고도 불린다. 이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잇달아 도입 의사를 밝히면서 국제금융계의 이슈로 부상했다.

오바마세의 요지는 이렇다. 총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대형은행들로부터 예금을 제외한 부채의 0.15%를 걷어 이번 금융위기 동안 은행에 지원한 공적자금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회수를 입법 목적으로 내걸었지만,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징벌적 성격도 부인할 수 없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등 월가의 CEO들은 ‘은행 징벌세’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금융위기에 대비한 보증기금 방식에 가깝다. 은행세로 기금을 마련해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세금 대신 기금을 사용하자는 것으로, 독일은 은행세로 12억 유로를 모아 안정기금에 적립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공적자금 회수 등의 측면보다는 은행세가 우리 경제의 대외 변동성을 줄이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은행세가 미국식대로 예금을 제외한 부채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 될 경우 예금 비중이 높은 국내 은행과 달리 외국 본점에서 단기 달러 차입영업을 하는 외국은행 국내 지점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08년 하반기 사실상의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 원인이었던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단기차입을 규제하는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다듬기만 하면 은행세는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으로 지목되는 외자 유출입의 진폭을 줄이는 유용한 수단이 될 듯하다.

배병우 차장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