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오늘을 소풍처럼
입력 2010-04-18 19:22
가족 한 사람이 지인들과 시골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로 출장 갈 때와 달리 가까운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이라 무척 설레었고, 일상의 탈출 그 자체를 마냥 즐거워하였다. 어찌나 어린아이처럼 자랑삼아 말하는지, 좋아서 하는 일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행지는 퇴직 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하여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살기로 오랜 전부터 작정하고 2년 전에 내려가신 분 댁이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쑥이랑 민들레와 함께 이름 모르는 나물을 캐고, 밤에는 별 보며 차 마시고 음악 들으면서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새벽까지 밤을 지새웠단다. 최상은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좋은 사람들끼리 담소하는 그날 밤 ‘오늘, 여기를 잘 살면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된다’라고 느꼈다 한다. 자연스럽게 내 자신 후일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젊음을 찬미하고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게끔 하는 분위기다.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있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은퇴 후 삶이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준비와 마음가짐’이 없다면 우울한 노년을 보내야 하는 형국이다. 반대로 ‘준비와 마음가짐’만 있다면 소풍 같은 인생 후반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나이 먹는 것을 걱정거리가 아니라 당당히 맞이해야 할 또 하나의 동반자라 간주해 버리기로 한다.
무엇보다 소유욕을 줄여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자유스러움의 짜릿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자족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비움에 만족하느냐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행복과 동의어는 아닌 것 또한 잘 안다. 또 하나 고려할 사항. ‘과거에 내가 누구였는데’라는 생각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말이 아닌 염화시중의 미소로 알려줄 멘토도 한 분쯤 모시는 것은 어떨까. 삶을 안내해주는 스승을 가진다는 사실은 최고의 행운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인생을 축구경기, 또는 바둑에 비유하곤 한다. 전반의 잘못됨이나 후회스러움을 반전하는 후반이 있다는 점과, 아무리 전반을 멋지게 잘 치르더라도 후반의 마무리를 잘못 한다면 그 경기는 패배한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꼭 이러한 진리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국한될까. 학생의 공부에도 통할 것이요, 장사나 기업의 도리에도 같을 것이요, 남녀 간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어진 인생,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준비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후회 없는 후반을 살아 보고 싶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던 천상병님의 귀천(歸天)처럼.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