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만능시대’에 50돌 맞는 4·19
입력 2010-04-18 19:24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4·19혁명에서 시작됐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권위를 빙자한 자유당 정권의 유사(類似) 왕정은 사망자 186명, 부상자 6026명의 희생을 내고서야 종식됐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던 서구의 조롱은 무색해졌다. 독립국가는 세웠으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은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4·19를 통해 전근대적 사회체제와 결별했다. 4·19로 물꼬가 트인 국민의 역동성이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져 개화기 이래의 숙원이던 근대화를 단기간에 달성했다.
왕조도, 식민지도 스스로 끝내지 못한 우리 국민은 나라를 세우자마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다. 건국과 동시에 민주주의가 정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국민은 이승만 정권을 겪으며 서구에서 이식된 민주주의를 이해했다. 4·19는 우리 국민이 비로소 민주주의를 자각한 의식혁명이었다.
4·19 이후의 정치사는 민주정신의 대장정이었다. 4·19 후의 정치적 혼란은 5·16 쿠데타를 불렀다. 민정 이양 후 선거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과 자주국방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72년 10월유신으로 장기 집권을 도모해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했고 그 대가는 10·26의 불행이었다. 이어진 12·12 쿠데타로 민주주의의 질곡은 연장됐지만 1987년 6·29 민주화선언으로 민주주의는 비로소 만개하기에 이른다. 산업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주주의도 30년도 걸리지 않는 압축 성장을 한 것이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은 지금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해져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제 후퇴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불가역(不可逆)의 수준이 됐다. 국회의원이 국회 기물을 마음껏 파괴하고도 ‘민주’와 ‘국민’을 팔아 변명하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는 시대다. 천안함 격침이라는 안보위기 상황에서 북한을 감싸는 국회의원들이 있고, 공무원들은 친북 노동단체에 자유롭게 가입한다. 세상은 여전히 투사와 열사로 넘친다. 이건 민주의 남용(濫用)이다. 4·19 정신은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오늘 4·19혁명 앞에 헌화하는 사람들은 우리 민주주의의 장래를 진지하게 걱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