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가족에 얽힌 애틋한 감성이 물씬… 황영성 화백 ‘고향이야기 40년’ 개인전
입력 2010-04-18 17:38
“찌그러진 초가며, 촌부, 황소, 숲, 황톳길 같은 먼 기억 속의 고향과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정겨운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슬픈 고향의 이야기, 가족에 대한 점액질 사랑과 그리움이 끈끈하게 담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 세대의 비극적이었던 과거 기억들이 모두 되살아나는 것 같다.”(소설가 문순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에서 5월 2일까지 ‘고향이야기 40년’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 황영성(69) 화백의 그림에는 고향과 가족에 얽힌 애틋한 감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소설가 문순태는 황 화백의 작품에 대해 ‘슬픈’ ‘비극’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우리 주변의 정겨운 모습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고 나지막한 초가가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는 ‘달빛마을’, 소 달구지를 타고 장에 가는 여인네들을 그린 ‘장터가는 날’, 좌판을 벌이고 손님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화면에 옮긴 ‘시장에서’, 사람과 동물 얼굴을 콜라주처럼 연결시킨 ‘가족이야기’ 등 출품작 60여점에서는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근원적인 고향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 고향이 강원도 철원인데 그곳에서 아홉 살 때까지 살다가 전쟁이 나는 바람에 전라도 광주로 내려왔어요. 나중에 다시 찾아가보니 제가 태어난 그 고향은 없어졌어요. 큰 마을이 사라지고 풀만 무성하더라고요. 누구나 저처럼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찾으려 하지 않겠어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보고 싶어요.”
작가는 40년 동안 한결같이 고향과 가족을 소재로 그렸지만 한 가지 화풍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다. 1970년대 ‘회색시대’ 작품은 힘든 시절 삶의 풍경으로 최근작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후 80년대 어느 여름날 푸른 보리밭에서 아낙네와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강한 생명력을 느껴 ‘녹색시대’ 작업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89∼91년 알래스카부터 페루까지 외국여행을 다녀오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른바 ‘아메리칸 인디언 루트’를 따라 붓질한 그의 그림은 다양한 물체들을 단순화해 빽빽이 배열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내 가족과 우리 이웃의 범위에서 벗어나 지구적인 차원의 가족, 그리고 동물, 식물,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조형물까지 한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하는 작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가족과 고향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5명으로 3명의 자녀를 둔 작가 자신의 가족상이나 다름없다. 황 화백은 “현대사회에서 5인가족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선대 미술학과와 대학원을 나와 국전 문공부 장관상(1973년)과 이인성미술상(2004년) 등에 이어 황조근정훈장(2006년)을 수상한 작가는 서정적 향토색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정감있게 들려주고 있다. 고향과 가족이야기를 쉴 새 없이 붓질하는 그의 작품은 더없이 순박한 심성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02-519-08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