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 인양 이후] “농구 잘한 형, 늘 강했던 너… 꼭 돌아올 겁니다”
입력 2010-04-16 21:49
돌아오지 못한 수병 8명이 있다. 천안함 전탐장 이창기(40) 원사, 전기장 최한권(38) 상사, 보수사 박경수(29) 중사, 전기사 박보람(24) 하사, 보수사 박성균(21) 하사, 내기사 장진선(22) 하사, 가스터빈병 강태민(21) 일병, 전기병 정태준(20) 이병. 이들의 가족은 16일 함미에 시신이 없다고 보고 군에 함미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가족과 지인들은 미귀환병들을 추모하며 안타까워했다.
“평소에 진짜 씩씩하고요, 형으로서 따를 만한 사람이었어요.” 대학생 염지웅(20)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강태민 일병을 처음 만났다. 강 일병은 키 1m78에 덩치가 크고 농구를 잘했다.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운동할 때는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반칙을 싫어했다. 경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나서서 말렸다. 염씨는 “태민이 형을 동경했는데 같이 농구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지난 1월 염씨는 휴가를 나온 강 일병을 만났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이야기하며 저녁식사를 했다.
염씨는 사고 3일 뒤 비보를 들었다. 처음엔 이름만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염씨는 “그게 형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며 “형도 다른 실종자들처럼 꼭 돌아오리라 믿는다”고 했다.
정태준 이병은 가정형편을 고려해 지난해 12월 입대했다.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벌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정 이병을 가르쳤던 부산 동의과학대 이화석(45) 교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성적을 잘 받은 걸 보면 자기 관리를 참 잘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정 이병은 지난달 100일 휴가를 나와 그간 모은 월급을 부모 손에 쥐어드렸다. “제대하면 꼭 호강시켜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부대에 복귀한 지 보름 만에 사고를 당했다. 승선 직전 “훈련에 들어가면 10∼15일 정도 연락을 못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 게 마지막 통화였다.
허정은씨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향친구 박성균 하사를 추억하는 글을 올렸다. ‘배고픔을 참지 못했던 니가/늘 강한 모습만 보였던 니가/장난끼가 참 많았던 니가/노래방 가길 좋아했던 니가/축구를 잘했던 니가… 지금 이 순간 당장 짠하고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허씨는 이어 ‘왜 이렇게도 네 빈자리가 큰지. 너는 우리한테 없어선 안 될 사람이었나 보다’며 박 하사를 그리워했다.
이창기 원사를 본받아 해군 부사관이 되겠다던 조카는 삼촌을 잃은 충격에 해군 지원을 포기했다. 이 원사의 형은 “동생이 직업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위험한 바다를 직장으로 삼는 게 걱정스러웠다”며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최한권 상사의 누나는 “동생이 있을 저 바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해 야속하고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내가 참 싫다”고 했다.
박보람 하사는 2008년 입대 직전 어머니에게 금반지를 선물했다. 어머니 박영이(48)씨는 “너무 작아서 새끼손가락에만 겨우 들어가지만 평생 빼지 못할 것”이라며 반지를 매만졌다. “그 고생을 하고도 왜 다시 배를 탔니.” 박경수 중사의 어머니 이기옥(59)씨는 원통해했다. 박 중사는 제2차 연평해전을 겪은 지 6년 만인 지난해 바다로 돌아가면서 천안함을 탔다. 장진선 하사의 외삼촌은 “지금은 어떤 말을 해서도 안 될 것 같다”며 “여전히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강창욱 김수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