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교회 개척기] 힘들었던 세번의 도전 평생 소박한 목회 밑거름으로

입력 2010-04-16 17:27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한복협 회장)

내가 교회를 개척한 것은 서울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11세 때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 평양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서울로 달려온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난 고등학생 시절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목사님은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설교 때마다 2만8000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김 목사님 말씀대로 고3 때 우물을 파기 위해 토요일마다 왕십리 벌판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장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천막을 치고 주일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 이름은 한양제일교회라고 했다.

서울대에 입학한 후에도 계속해서 교복을 입고 전도를 다녔다. 어떤 여성도 한 분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천사 같다”며 “우리 한양제일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라고 말해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총신을 졸업한 어느 전도사 한 사람이 그 교회를 자기에게 달라고 해서 그 전도사에게 주고 나는 교회를 떠났다.

후암교회에서 4년 동안 교육목사를 한 다음인 1978년 6월부터 79년 2월까지 강남의 영안교회를 개척한 일이 있다. 어느 한 가족이 1억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해 교회당을 건축한 후 나에게 목회자로 와 달라고 부탁해서 시작한 것이다. 나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원리를 강조했다. 개척 8개월 만에 110여명의 신자로 성장했지만 어느 날 교회 설립자인 이 모 장로가 나를 만나서 교회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 중심의 교회이기를 원했던 설립자에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2월 18일 마지막 설교를 담담하게 하고 교회를 그만두었다. 우연히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던 박윤선 목사님께서 월요일 아침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목사님, 어제 큰 승리 했습니다.” 8개월 동안의 개척 목회 경험은 나에겐 너무나 유익했다.

세 번째 교회 개척은 80년 4월 6일 부활주일에 청담동 삼익상가 3층에서 3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강변교회 입당예배를 드린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교회를 시작했다. 나는 강변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힘쓴다.’ 나는 그 소박한 표어를 가지고 30여년 동안 소박한 목회를 했다. 하나님께서 강변교회를 축복하셔서 98년에는 교회당을 건축하고 도곡동으로 옮겼는데 20년 후인 2000년에는 390여명의 장년이 주일예배에 출석하게 되었다.

수십년간의 목회의 길을 되돌아볼 때 삶이 180도로 변화되는 새신자들은 나에게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을 주었다. 다시 태어나서 목회를 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소박한 표어를 가지고 꼭 같은 방식으로 목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