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 20일만에 인양] 바다에 묻은 못다한 사랑… 애틋한 사연들

입력 2010-04-16 01:49


“올해는 꼭 미뤄둔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박경수 중사의 부인 박미선(29)씨는 15일 천안함 함미에서 실종 장병들의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박씨는 박 중사와 혼인신고만 했을 뿐,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둘은 올해가 가기 전 꼭 결혼식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올해는 둘이 함께 산 지 10년이 되는 해였고, 소중한 딸 가영(8)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박씨는 “내가 1시간만 전화로 붙들고 있었더라도…”라며 흐느꼈다. 지난달 26일 박씨는 남편과 오후 8시20분까지 전화 통화를 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1시간15분 전이었다. 남편은 “내가 출동을 너무 자주 나갔으니까, 이번에 돌아가면 가영이랑 꼭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갑판에서 통화하던 남편은 당직을 서야 한다며 배 안으로 들어갔다. 천안함에서 돌아온 장병들은 박 중사가 보수공작실에 있었다고 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박씨는 2002년 연평해전 때처럼 침착했다. 연평도에 있는 모든 병원과 해군본부,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수소문했던 그때처럼, 박씨는 당황하지 않고 남편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이 대답하지 않았다.

‘지각 결혼식’ 약속을 못 지킨 남편은 또 있었다. 강준 중사는 해군 부사관 동료인 아내와 다음달 9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기혼 장병에게 제공되는 해군아파트를 얻으려고 혼인신고만 해 뒀었다. 원래 결혼식을 계획했던 날은 지난달 28일이었다. 예식장 예약이 꽉 차서 결혼식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강 중사는 지난달 결혼식을 올리는 대신 천안함에 올랐다.

차균석 하사의 여자친구 김모(23·여)씨는 침몰 직전인 오후 9시16분 “매화수 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차 하사에게 보냈다. 매화수를 사주겠다는 차 하사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으나 차 하사는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그러나 차 하사의 미니홈피로 찾아가 매일 말을 걸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우리 오늘 놀이공원 가기로 한 날이잖아, 내 맘은 벌써 다녀왔어.” 8일에는 “날씨가 좋아도 자기랑 데이트 못하니까 싫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야 선체 인양이 빨리 된다니 날씨가 좋아지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널 구하러 갈게”라고 말한 다음날, 차 하사는 끝내 함미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씨는 슬픔을 딛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둘은 2006년 교회 수련회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다.

평택=이경원 노석조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