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기억은 믿을 만 한가

입력 2010-04-15 19:00


내가 자주 드나드는 상가의 주차장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현장을 본 것은 아니고, 상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한 번, 그리고 일을 마친 후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면서 또 한 번, 이렇게 똑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우연히 두 번 듣게 되었다.

올라갈 때 들은 바로는 70대 노인과 30대 젊은이가 주차 문제로 말다툼을 했는데, 완고한 노인이 자신의 운전 과실을 가지고 젊은이에게 꾸짖더라는 내용이었다. 억울한 젊은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도 노인은 수긍하지 않고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지금 어른에게 대드는 거요?” 하며 가정교육이 엉망이라는 둥 쓸데없는 말까지 들먹였다고 했다.

내려갈 때는 정말 같은 사건이 맞나 귀를 의심할 만큼 상황 묘사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젊은이가 노인 차를 긁어 놓고서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운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귀까지 못 알아들으세요?”하며 노인에게 무례하게 굴더라는 것이다. 과연 어느 편의 말이 진실일까?

이런 경우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제작한 ‘라쇼몽(羅生門)’인데, 이 영화는 60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찬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세 남자가 라쇼몽이라는 폐허가 된 문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서있다. 이들은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 그러니까 사흘 전에 한 도둑이 숲속을 지나가던 부부를 공격하여 여자를 겁탈하고 남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의문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관련자들이 경험하고 본 것이 제각기 달라서, 각기 다른 증언을 하는데, 도대체 누구 말이 진실인지 그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사건은 완전한 물음표로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건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는 기억 자체의 불완전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라고 여운을 남긴 ‘라쇼몽’의 마지막 대사처럼, 진실은 진실된 기억과는 별개인 것 같다.

영어로 기억은 remember이다. 그러니까 사건을 이루는 구성성분들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분리된 후(dis-member) 다시 재조립된 것(re-member)이 기억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의 장면과 기억된 장면 사이에는 불가피한 틈이 벌어지고 그 틈 속으로 허구가 개입되고 마는 것이다.

무리 진실을 갈구한다 해도,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히도 완벽한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진실은 그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삶은 바쁘게 흘러가야 하고, 끝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은 그냥 그렇게 잊혀져갈 운명이다.

이주은 성신여대 교수 미술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