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 20일만에 인양] 원인모를 침몰… 목숨 건 구조… 싸늘한 주검만이…

입력 2010-04-15 22:01


침몰에서 인양까지 사고 재구성

해상 경계 임무를 맡아 천안함에 탄 104명의 승조원은 지난달 26일 오후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29명은 당직근무를 섰고 나머지 75명은 식당과 침실, 후타실에서 각각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쿵’ ‘쾅’ 소리와 함께 암흑으로=평온한 상태로 있던 승조원들이 ‘쿵’ ‘쾅’하는 원인 모를 굉음을 연거푸 들은 것은 오후 9시22분이었다. 천안함 내부는 암흑으로 변했고 승조원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생존자인 오성탁 상사는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뜨고 정전이 됐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최원일 함장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쾅’ 소리 이후 함장실 문이 잠겨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최 함장은 부함장 김덕원 소령과 승조원의 도움으로 어렵게 함장실을 빠져나왔다. 갑판에 올라서서 배 뒤쪽을 본 최 함장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함미 부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최 함장은 장교들에게 승조원 구출 지시를 내리고 인원을 파악했다. 58명뿐이었다. 나머지 46명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함내를 다시 한번 수색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사고 50여분 만에 해경 501함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어업지도선이 구조한 2명을 제외한 56명이 10인승 립보트를 통해 차례로 구조됐다.

◇힘겨운 수색 작업=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여단(UDT) 소속 잠수사들이 가라앉은 함수와 함미를 찾기 위해 투입된 것은 지난달 28일 오전이었다. 사고 당시 군이 밝힌 생존 가능 시간은 69시간. 그 안에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한 잠수사들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됐다.

상황은 열악했다. 잠수요원들이 심해잠수를 한 뒤 몸을 추스르기 위해 필요한 감압 챔버는 한 대뿐이었다. 악천후와 빠른 조류는 구조를 지연시켰다. 어려움 속에도 잠수사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하루 두세 번씩 잠수를 강행했다. 결국 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30일 오후 3시쯤 구조 작업 중 순직했다.

지난달 31일 이후 기상 여건 때문에 중단됐던 구조 작업은 지난 2일에야 속개됐다. ‘반드시 내 아들은 살아 있다’ ‘남편이 죽었다고 단 한번도 생각한 적 없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에 절망이 감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안타까운 소식은 이어졌다. 지난 2일 오후 8시30분쯤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저인망 어선 98금양호가 작업을 마치고 조업 구역으로 돌아가던 중 대청도 인근에서 침몰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 다음날인 3일 오후 6시10분쯤에는 천안함 실종자 가운데 처음으로 남기훈 상사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측은 같은 날 오후 9시40분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죽일 수는 없다”며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선체 인양 작업에 돌입해 줄 것을 군에 요청했다.

◇선체 인양과 실종자 수습=천안함을 인양하기 위해 지난 2일 경남 거제를 출발, 사고 해역에 도착한 해상 크레인 ‘삼아2000호’를 필두로 4일부터 본격적인 선체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7일 오후 4시쯤에는 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됐다. 선체 인양에 필요한 체인을 함미에 연결하기 위해 들어간 민간 잠수사들이 함미 기관조정실 부분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다감했던 세 딸의 아버지는 가족의 애타는 기다림을 뒤로한 채 그렇게 시신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함미 일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2일이었다. 군 당국과 민간 인양팀이 기상 악화를 우려해 이날 오후 함미를 백령도 근해 방면으로 4.6㎞가량 이동시키면서 함미 부분이 포착된 것이다. 대형 크레인은 함미 부분에 연결한 체인 두 가닥을 해저에서부터 끌어올려 선체 윗부분 일부가 물 밖으로 드러난 상태에서 함미를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절단면이 공개돼 사고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함미 인양에 참여해 절단면을 목격한 88수중개발 정성철 대표는 “함미 절단면 상태가 두부 자른 모습처럼 단정하지 않았다”며 “저절로 잘린 건 아니다”고 말했다.

군 당국과 민간 인양업체는 14일 오후 세 번째 체인을 함미에 연결하는 등 인양 준비 작업을 완료했다. 15일 오전 9시 세 개의 체인에 묶인 천안함 함미는 20일 만에 물 위로 올려졌다. 군과 민간 인양팀은 이날 오전 함미 내 배수 작업을 완료하고 오후에 함미를 바지선에 실어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출발했다.

인양 작업 마무리에 나섰던 군은 함미 내부에서 실종 장병의 시신들을 확인했다. 먼저 수습되고 신원이 확인된 서대호 방일민 이상준 하사의 시신이 첫 헬기편으로 이날 오후 2함대로 옮겨졌다. 이후 실종자의 시신들이 차례로 2함대에 도착했다. 온 국민의 안타까운 기다림과 눈물 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20일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실종자들이 차가운 주검으로 가족 품에 돌아온 것이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