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글로벌 경영 돛 올린다-(3) 한국형 IB로 가는 길] ‘선진국 IB 모델’ 한계 새로운 영역 개척해야
입력 2010-04-15 18:16
“‘한국형 IB(투자은행)’로 해외에서 승부하라.”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주도의 IB 모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고위험보다 투자의 안정성이 강조되는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과 전문화를 통해 한국 금융회사만의 IB 모델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한국만의 경제 성장 경험을 이용하라=해외시장 공략에 나선 국내 증권사·자산운용사들은 현재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동안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던 글로벌 IB들이 몰락하며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IB 모델이 사라지면서 목표 자체를 상실할 수도 있는 처지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길은 기존 IB 모델과 차별화된 ‘한국형 IB화’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과도한 ‘자율과 경쟁’에서 ‘규제와 안정’으로 급변하는 분위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업영역을 먼저 개발해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한국 고유의 경험을 살린 금융 기법도 발전시킬 만하다. 금융투자협회 서기석 이머징마켓지원센터장은 15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주력하는 신흥시장으로는 한국의 새마을운동 노하우와 금융투자업이 접목해 진출하는 것도 한국형 IB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기업 인수합병(M&A)·기업공개(IPO)·파생상품 거래 등 전 분야 동시 진출에 욕심을 냈다가는 같은 분야에서 이미 확고한 아성을 구축한 거대 글로벌 IB와 붙어 백전백패라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석훈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가 그동안 실력을 쌓아온 IPO나 중개매매(브로커리지) 등 전통적 IB 분야에도 파고든다면 새로운 수익사업을 창출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이 같은 시대 변화를 깨닫고 특기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중국에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IPO, 베트남에선 부동산 PF와 M&A 등 기업 구조조정, 카자흐스탄에선 채권 중개와 금융자문업에 각각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증권은 외국기업들의 한국시장 상장 사업에 방점을 찍었다. HMC투자증권은 모기업인 현대차그룹의 중국 내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기업들의 국내 상장과 한국 투자자들의 중국시장 투자 기회 확대에 집중할 방침이다.
◇특정 지역 쏠림과 조급증 경계해야=국내 증권사 등이 확실한 전략 없이 해외진출의 당위성에 떠밀려 나가는 데다 일부 신흥시장에만 진출하는 쏠림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주로 진출하는 중국이나 홍콩 등은 이미 많은 국내외 증권사가 경쟁 중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같은 곳은 금융시장 규모가 한국의 4∼56%에 불과해 결국 한국 기업 스스로 경쟁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무섭게 성과를 거두겠다는 조급증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산업은 인적 네트워크와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생겼을 때 비로소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이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