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평화적 재처리’ 확보
입력 2010-04-15 18:51
2012년 2차 핵안보정상회의의 서울 개최가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수많은 각 국 정상들이 북핵이라는 위협에 노출된 당사국 한국에 모여 핵안보와 비확산 문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필요조치 이행을 점검한다는 것 자체가 엄중한 대북 메시지다. 물론 그 이전에 북핵 문제가 잘 해결되더라도 핵안보와 관련된 의미는 상당하다.
두 번째는 한국이 평화적 원자력 이용 모범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1978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20개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는 현재 건설 중인 8기를 포함해 19기를 더 짓는다. 그러면 원전의 전력생산 비중이 현재 36∼38%에서 56%까지 높아진다. 우리의 원전 규모는 세계 5위다. 게다가 원전사고율은 제로에 가깝고, 가동율은 93%에 이른다. 이런 나라가 없다. 비핵확산조약(NPT)도 성실히 지키고 있다. 안보적 측면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돼서는 최상위급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2차 회의 개최를 적극 권유한 것은 이 두 가지 배경을 깔고 있다. 정상회의 실무를 담당한 조정관(셰르파) 회의에서 미국측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한국 개최 배경을 사전 설명했는데, 이 두 가지 기준을 언급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평화적 원자력 이용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군사용과 민수용의 양면성을 가진 핵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핵 투명성에 관해 국제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원자력의 경제적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이미 47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한국형 원전사업을 따냈다. 다른 여러 국가들도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도 1979년 드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원전 2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자원 확보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같이 중요한 원자력 이용에 걸림돌이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다. 원자력협정은 한마디로 ‘사용후 원료 재처리’를 못하게 하고 있다. ‘우라늄 채광→농축→핵연료제조→사용→사용후 연료재처리’라는 일련의 핵주기에서 한 부분이 빠지는 것이다.
재처리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으며, 이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은 이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현재 우리의 원전 20기에서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가 1만t 넘게 창고에 쌓여있다. 2016년에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재처리를 하게되면 94.4%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엄청난 비용의 우라늄 구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폐기물도 5.6%로 줄어 보관이 쉽다. 무엇보다 원전 기술이 한단계 높아져 명실상부한 원전 강국이 될 수 있다.
2차 회의 개최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데 대해 미국 측이 고마워하는 부분도 있다. 대통령 방문 직전 경호 및 의전 문제를 최종 협의하러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에게 백악관 경호당국은 “모든 것을 최상급 대우하겠다”며 회의를 10분 만에 끝냈다. 보통 다자 정상회의 경우, 대우를 좀 더 잘 받으려는 방문국측과 주최국 사이에 줄다리기가 있게 마련이라고 한다. 이번에 미국 측은 국가 원수들 중에서도 이 대통령을 VVIP급을 대우했으며, 우리측도 아주 만족했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를 미국 측이 핵안보 문제의 부담을 같이 지기로 한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시작되면 이런 분위기를 적극 활용, 재처리 금지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2차 회의 의장국으로서 핵안보 외에 평화적 원자력 이용과 관련된 이슈를 의제화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투명성과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심어주는 ‘평화적 재처리’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2004년 원자력연구원의 농축우라늄 추출 사건 같은 것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일부 보수파들이 주장하는 ‘평화적 핵주권’ 같은 용어도 쓸 필요가 없다. 괜히 국제사회를 자극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김명호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