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년, 어제와 오늘] 이념·지역을 초월한 ‘공통의 기억자원’

입력 2010-04-15 17:51


3회:시민의 발견, 미완의 혁명을 넘어

1960년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이 50주년을 맞았다. 4·19혁명은 민주와 자유, 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한국 민주주의 새 장을 연 대사건이었지만 5·16군사정권의 등장으로 혁명의 과실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기도 하다. 4·19의 현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4·19정신을 실천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과제가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독재정권 무너뜨린 시민혁명=4월혁명의 가장 큰 의의는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성공한 혁명이라는 점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고교생 등을 비롯해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문인, 교수 등 지식인과 도시 빈민, 서민들이 가세하면서 민주연합의 구축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4월혁명은 현대 한국을 넘어 근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최초로 성공한 시민혁명의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냉전 초기 자유진영에서 성공한 보기드문 학생봉기이며 민주혁명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19혁명은 한국에서 독재의 제도화, 항구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계기였다고 강조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4·19혁명의 밑바탕에는 시민의식의 성장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4·19혁명은 시민사회의 힘 때문에 일어났다”면서 “산업화로 인한 인구집중현상과 분단·전쟁을 거치며 이주해온 피난민들로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매스컴과 근대교육의 보급으로 시민의식이 성장한 것이 4·19혁명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다.

4·19혁명은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 묻혀 있던 반외세, 민족통일, 자립경제 등의 이슈를 폭발적으로 표출시키는 계기가 됐다. 민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역사적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됐고 이후 노동운동과 청년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4·19는 한국 혁명사, 민주화운동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횃불이었다.

◇추동력 부족으로 좌절된 혁명=4·19는 단기 목표를 달성한 혁명이지만 한계도 안고 있다. 혁명의 주도세력인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학교로 돌아가면서 혁명은 표류했다. 4·19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념을 정치세력화하고 제도화시킬 수 있는 구심체가 필요했지만 학생층의 주장을 대변하고 이끌 정당이 없었다. 이승만의 자유당정부에 이어 들어선 민주당정부는 각계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혁명적 요구들을 수용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진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 혁명 이후 이승만 집권 당시의 부정선거 사범과 부정축재자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가 좌절된 것에 대해 “부정선거와 부정축재 처리는 입법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투영된 결과 처벌 대상자가 대폭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듬해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민주, 자유,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4·19혁명은 변화를 이끌어낼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4·19의거’로 축소됐고,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이용되기도 했다.

◇4·19정신 발전적 계승해야=자유와 인권의 신장, 불의에 대한 항거, 민주주의 정착, 민족의 평화적 통일, 자립경제 등 4·19가 내건 과제들은 중단 없이 추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김태일 교수는 4·19가 남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동적인 힘을 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4·19의 시대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연대의 틀을 짜야 한다”며 “최근 시민사회가 ‘IT에 기반을 둔 신유목적(新遊牧的) 특성’을 지닌 점을 고려해 시민사회의 힘을 정치가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함께 비인간적 사회를 극복하고 국가와 사회의 공공역할 회복을 통해 인간화를 달성하고자 할 때 4월정신의 회복과 구축이 그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4월정신이야말로 이념과 지역을 넘어 합의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공통의 기억자원이자 비전자료”라고 말했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4·19 국경일 지정 검토, 4·19혁명 유공자들을 예우하기 위한 개별법 제정, 4·19이념을 계승 발전하기 위한 정책연구소와 교육기관 설립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