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0) 손 제독, 전 해군과 인천상륙작전 참가
입력 2010-04-15 17:53
손원일 제독은 전투함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군 자체적으로 모금을 실시했다. 해군들은 월급의 일부를 떼어 성금을 내고 해군 부인들은 삯바느질을 했다. 그렇게 모은 6만 달러를 들고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배를 사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감복한 이 대통령은 정부 돈을 더 보태 12만 달러로 중고 함정 ‘백두산함’과 세 척의 배를 사줬다. 백두산함은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란민을 실어 날랐다.
인천상륙작전에 전 해군이 참여했다. 손 제독은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중요한 회의가 있어 며칠 나갔다 올 테니 아이들을 부탁해요”라고 짧게 인사했다. 그런데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때 부여잡은 말씀이 시편 23편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나라를 세워 달라고, 나라를 위해 싸우는 젊은이와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며칠 뒤 남편은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왔다. “당시 미국의 작전 계획은 ‘서울 입성이 지연되면 서울 일대를 폭격한다’는 것이었소. 만일 그렇게 되면 서울에 남아 있는 국민들은 어찌 되겠소? 이를 저지하려고 맥아더 장군에게 ‘내가 직접 형편을 살펴보고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던 것이오.”
그 길에 미국 선교사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연락장교 소위, 부관이 동행했다. 서울역에서 파고다 공원으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펑’ 하고 포탄이 터졌다. 또 북한군의 총탄이 날아왔다. 선교사를 비롯해 소위와 부관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남편만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다.
그는 “아마 하나님께서 좀 더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나를 살려주신 것 같아”라며 “동료들에게 빚 진 마음으로 살아야겠어”라고 다짐했다.
결국 손 제독은 해병대와 함께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았다. 남편은 전쟁의 큰 상처를 입은 서울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땅굴, 다락에서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서울 하늘 아래 “만세”를 부르며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국군 최고지휘관 자격으로 포고령을 발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모든 시민은 안심하고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라. 그리고 공산군에 협력한 사람이라도 이북으로 도망가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함부로 죽이지 마라.”
이 짧은 문구는 생명의 소리였다. 진짜 공산군은 벌써 도망갔을 테니, 살기 위해 잠시 공산군에 협력한 남아 있는 자들을 용서하고 이해해 주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때쯤 공산군을 도운 부역자 400명을 인수받고 빠른 시일 내로 이들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이들을 몰래 배 수리하는 공장에 합숙시키고 일거리를 제공했다. 상부의 계속된 처형 지시에도 그는 “죽여도 내가 죽일 테니 걱정 말라”며 강하게 말했다. 남편은 부역자들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공산군에 잠시 협력했을 뿐,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은 순차적으로 그들을 살려 보냈다.
사람을 사랑하는 손 제독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