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시트콤 ‘지붕킥’- 드라마 ‘추노’ 제작 ‘초록뱀미디어’ 대표 길경진
입력 2010-04-15 17:46
그간 TV의 상투성은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 실은 정반대였다. 자극적이되 진부할 것. TV 드라마의 성공비법이었다.
상경한 식모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지붕킥)’과 도망 노비를 쫓는 추노꾼을 다룬 KBS 2TV 드라마 ‘추노’. 올 들어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두 편은 바로 그 비밀공식을 깨뜨렸다. 두 주인공의 황당한 죽음을 담은 ‘지붕킥’의 엔딩은 대놓고 시청자를 불편하게 했다. ‘추노’ 영상의 풍성함은 고정된 프레임을 고수해온 TV 영상의 커트라인을 획기적으로 높여 놓았다. 지난달 26일 제46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지붕킥이 TV 부문 작품상을, 추노가 극본상을 받았다.
지붕킥과 추노는 TV 드라마 제작사 ‘초록뱀미디어’ 작품이다. 2000년 출범해 이병헌 송혜교 주연의 ‘올인’(2003)을 시작으로 ‘불새’(2004) ‘주몽’(2006) ‘일지매’(2008) ‘에덴의 동쪽’(2008)에 이어 올해 지붕킥과 추노까지 미니시리즈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길경진(45) 초록뱀미디어 대표를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나 두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TV 드라마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화제작 두 편을 제작했다. 성공비결은.
“지붕킥은 캐릭터도 좋았지만 사회적 코드를 코믹 코드에 잘 버무리지 않았나 싶다. 추노는 업계에는 잘 알려진 대본이다. 시청률 20%는 자신했지만 그렇게 빨리 30%를 뛰어넘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4회 만에 30%를 넘어섰다). 영화장비를 도입한 영상미(추노는 TV 드라마 최초로 레드원이라는 영화 카메라를 사용했다)와 재치 있는 대사가 주효했다. 운도 따라줬다. 원래 지난해 10월 방영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KBS 2TV 드라마) ‘아이리스’가 치고 들어와 편성이 올 1월로 밀렸다. 그땐 속상했다. 제작기간이 늘어나면서 비용도 10% 더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히트한 아이리스 덕을 많이 봤다. 후반 작업에도 충분히 공을 들일 수 있었다.”
-김병욱 감독과는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데.
“거침없이 하이킥 성공 후 MBC쪽에서 후속작 요청이 있었다. 원래 김 감독은 미니시리즈를 생각했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였는데 (김 감독) 스스로 맘에 별로 들지 않는다면서 접었다. 작품할 때는 완전히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완벽주의자 같더라.”
-지붕킥 영화화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회사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감독님 반응이 좀…. 그쪽 의지에 달려 있다. 결말은 원래부터 최다니엘과 신세경이 죽는 거였다. 중간에 ‘새드 엔딩이라더라’는 둥 결말이 이미 새나가지 않았나. 게다가 영화제작 얘기가 있어서 (제작사는) 죽이지 말고 결론을 달리 가자, 이런 의견을 냈다. 작가들도 아마 (죽음 말고 다른 결론을)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감독님 생각대로 갔다. 주인공이 죽는 결말 때문에 영화 추진이 애매해진 측면이 있다.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영화화는) 힘들 것 같다.”
-신하균 주연의 ‘위기일발 풍년빌라’(tvN) 등 케이블TV 드라마가 주목받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종편)도 조만간 생길 전망이다. 지상파 위주의 드라마 환경이 변화하는 건가.
“종편 생기고 IPTV가 확대되면 지상파 파워는 약해질 거다. 미국에서도 케이블TV 덩치가 커지면서 지상파를 인수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나. 현재 연간 제작되는 지상파 드라마는 50편 안팎에 불과하다. 케이블, 종편 덕에 드라마 제작편수가 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거래처가 많아지는 것이다. 편성권을 갖는 지상파 방송사와 제작사 간 불공정 계약 관행도 바뀔 걸로 희망한다. 다만 드라마 시장은 기본적으로 광고 시장이라는 점에서 낙관만 할 수는 없다. 기업 광고 지출 규모가 정해져 있는데 제작편수가 늘어난다고 (시장이)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거다.”
-추노는 독특한 제작 시스템으로 방송가에서 주목받았는데.
“추노는 KBS와 초록뱀미디어가 20억원씩 5대 5로 출자해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제작했다. 이런 방식은 송일국 주연의 ‘바람의 나라’(2008)에 이어 두 번째다. 제작비(추노 제작비는 회당 2억7000만원씩 약 65억원) 제외하고 나머지 수익을 5대 5로 나눈다. 현재까지 제작사 수익은 10억∼20억원 수준이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제작비 명목으로 일정액의 회당 방영료를 지급하고 해외판권 등 모든 권리를 포괄적으로 갖거나 일부만 양도했다. 기존 외주 제작 관행과 비교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드라마가 히트해도 제작사는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라는 얘기인가.
“지붕킥은 다시보기 등 부가 수입이 엄청나게 크다. 126부작으로 에피소드가 많은데다 방영시간이 저녁 7시대여서 실시간으로 보지 못한 시청자가 많았다. 지붕킥 제작비는 회당 4000만원인데 MBC로부터 회당 2400만원(시청률 20%를 넘긴 뒤 3000만원)을 받았다. 차액은 제작사가 메워야 한다. 그럼에도 제작사는 MBC가 벌어들이는 뉴미디어 부가수익의 10∼20%만 받는다. 이건 산업적으로 불균형한 거다. 거침없이 하이킥 때는 (부가수익을) 한 푼도 못 받았다. 작품이 계속 히트하면 간신히 현상유지하고 한 번 실패하면 완전히 망가지는, 제작사 상황이 지금 그런 거다. 흥행 비즈니스는 이를테면 5편을 연속 실패하더라도 1편 성공하면 그걸로 손해를 복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업계 버블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2∼3년 전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대거 상장되고 자금이 몰리면서 배우 개런티, 작가 비용 등이 치솟았다. 그런 버블 시기는 지났다. 물론 버블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배용준 비 원빈 장동건 이병헌 송승헌 같은 한류 배우 출연료는 회당 5000만원 이상, 스타 작가는 회당 2000만원 이상이다. 보통 방송사가 제작사에 주는 방영료는 회당 9000만원∼1억5000만원 수준이다. 주연배우들과 작가 주면 끝이다. 이제 제값 주고 콘텐츠를 사는 선진국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