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은 요동쳤다, 세 황후의 운명과 함께… ‘황후삼국지’

입력 2010-04-15 22:35


황후삼국지/신명호/다산호당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숱하게 각색된 세 여자의 인생이 책 한 권에서 펼쳐진다. 청의 서태후, 조선의 명성황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 등 동북아 삼국의 황후를 들여다 본 ‘황후 삼국지’는 격변기를 맞은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펼친 세 여자의 철학과 인생을 비교한다.

저자인 신명호 부경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평가에 객관성을 확보한다. 또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고 고민하는 황후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함으로써 읽는 재미도 준다.

1908년 74살의 나이로 태후로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서태후는 손에서 권력을 놓지 않았다. 18살에 함풍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 후 47년간 수렴청정, 훈정, 훈교로 권력을 장악했다. 권력에 중독된 그는 하나뿐인 아들 동치황제보다 왕좌가 우선이었다. 아들은 언제나 나서려는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태후는 동치황제의 학문이 성취되면 즉시 귀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아들이 성인이 돼서도 수렴청정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아들의 부인 아로특시를 미워했고, 측근을 시켜 아들을 언제나 감시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며느리를 구타했으며, 이 둘의 부부관계까지 간섭을 했다. 동치황제가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요절하자 그녀는 4살짜리 조카 재첩을 양자로 들여 수렴청정을 계속했다.

하루코 황후가 1924년까지 보낸 66년은 평온한 시간이었다. 20살에 메이지 천황의 황후로 입궁한 그녀 앞에는 시어머니, 남편, 자식 등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없었다.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가족 관계에서 불화를 만들지 않은 것은 그녀가 화목함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력자로 머무는 데 기쁨을 느꼈다. 자식을 잉태하지 못한 그녀가 현명한 황후이자 자애로운 국모로 기억되는 이유다.

청나라 전쟁을 두고 그녀가 해낸 조력자 역할은 안주인의 자애로움을 한껏 보여준다. 부상자를 위로하기 위해 병원에 문병을 가거나 손수 만든 붕대를 참정 장병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그녀는 남편을 도왔다. 또한 참전 장병의 가족은 떨어져 있는 고통을 느낀다며, 자신도 메이지 천황과 떨어져 도쿄 어소에 머문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조선의 민비는 가정과 국가를 모두 취하려고 했다. 남편의 신뢰와 국정 장악력, 두 마리 토끼를 잡기까지 그녀는 끈질기게 투쟁했다. 1895년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에게 시해당하기까지 45년 동안 그녀는 계속 싸웠다. 결혼 후 10년은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싸웠고 이후 20년은 조선을 삼키려는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와 맞섰다.

별입시(別入侍)에서 민비의 일과 가정은 교차한다. 들어와 모신다는 뜻의 ‘입시’는 왕궁 수뇌부가 궁궐로 들어와 왕을 모시며 국정을 보고하고 논의하는 장이다. 고종과 민비는 한밤중에 정치와 국정문제를 의논하곤 했다. 밤늦은 시간에 사사로이 신료들을 불러 밀담을 나눴는데 이를 ‘별입시’라 칭했다. 이를 통해 부부간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으며 황후의 국정 장악력은 높아져갔다. 최후만을 놓고 보면 민비가 가장 비참하다.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 당한 뒤 시신은 불태워진 모욕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사후 가장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왕비의 비참한 최후는 외세에 대한 보복심을 불러일으켰고 대한제국이 세워졌다. 또한 사후 명성황후가 되었으니 ‘왕비 민씨는 죽어서 살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종의 신뢰를 얻었고, 아들 넷과 딸 한 명을 두었으니 부인과 엄마로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반면 서태후는 곁에 남편과 자식 없는 ‘고독한 권력자’로 보인다. 그녀가 세상을 뜨고 3년 후에 청나라는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젖먹이 황제를 도울 조력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태후가 숨을 거두면서 청나라의 생명도 가져갔다고 평가한다.

하루코 황후는 일본 군국주의화의 조력자라는 불명예를 얻는다. 황제를 조력한 것은 좋았으나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내조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과의 관계는 원만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점에서 박복한 인생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