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가슴이 따뜻해지는 동시조 읊어 볼까”… ‘분이네 살구나무’

입력 2010-04-15 18:07


분이네 살구나무/김용희 엮음·장민정 그림/리젬

“동구 밖 흰 옷자락/흔적 없이 사라지고//미루나무 끝 가지에/노을 한 쪽 걸렸다.//시집간 누나가 띄운/엽서 한 장 같구나.”(유성규의 동시조 ‘저녁노을’) 해 질 무렵 동구 밖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시집간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동시조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동시인인 김용희 작가가 64편의 동시조를 엄선해 묶은 것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옛 동시조와 교적 최근 작품까지 골고루 실었다.

동시조는 어린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담아낸 동시의 한 갈래지만 시조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정형동시를 말한다.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 가락에 천진무구한 동심의 상상력을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것이다.

“아득한 바다 위에/갈매기 두엇 날아 돈다.//너훌너훌 시를 쓴다./모르는 나라 글자다.//널따란 하늘 복판에/나도 같이 시를 쓴다.”(이은상의 ‘나도 같이 시를 쓴다’)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등의 시조로 유명한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은 바다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의 날개짓에서 갈매기가 하늘에 시를 쓰고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네가 보낸 한 장 엽서는/네가 보낸 한 장 바다.//꽂게 같은 이야기들이/곰실곰실 기어 나온다.//썰물에 나갔던 바다가/밀물 타고 들어온다.”(정완영 ‘받아 든 엽서’) 시인은 바닷가에 사는 친구로부터 날아든 엽서에서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밀물이 밀려오는 모습을 떠올린다. “동네서/젤 작은 집/분이네 오막살이//동네서/젤 큰 나무/분이네 살구나무//밤 사이/활짝 펴 올라/대궐보다 덩그렇다.” 정완영의 ‘분이네 살구나무’에서는 동네에서 제일 작고 초라한 분이네 집이 달빛 아래 살구나무가 활짝 꽃을 피우자 어느새 화사한 대궐로 바뀐다.

상상력이 번뜩이는 동시조들에서는 맑고 애틋한 동심의 세계와 우리 가락의 흥겨움이 배어 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