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곤충 공존하는 지혜 찾아야 하죠”… ‘곤충의 밥상’ 펴낸 정부희 박사

입력 2010-04-15 17:24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곤충의 세계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내가 경험한 흥미로운 곤충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우리 땅에 사는 다양한 곤충들의 세계를 소개한 ‘곤충의 밥상’(상상의숲)을 출간한 정부희(48) 박사는 13일 대중적인 곤충기를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은 먹이를 중심에 놓고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먹이를 풀, 나무, 버섯, 시체와 똥, 다른 곤충 등 5가지로 나누고 그 먹이로 살아가는 곤충들의 특성을 500여컷의 생생한 생태 사진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정 박사는 “곤충은 각자의 식성에 맞게 먹이를 골라 먹는다”면서 “먹는 것에 따라 사는 곳과 형체, 습성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충남 부여의 산골 마을에서 자란 정 박사는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영문학도였지만 마흔이 넘어 곤충학자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30대 초반 자녀들과 함께 떠난 문화유산 답사 길에서 야생화에 빠져들었고, 그 뒤 새에 끌렸어요. 마지막에 관심을 갖게 된 게 곤충이었죠.”

곤충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궁금했던 그는 책만으로는 호기심을 채울 수 없어 2003년 성신여대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문연구가의 길로 들어서서 2008년 곤충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가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곤충은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거저리과다. 버섯이나 모래, 썩은 나무 등에서 서식하는 거저리과는 국내에 130종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거저리나 애기버섯벌레 등 버섯을 먹고 사는 버섯살이 곤충은 국내에서는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어 그가 개척하다시피 하는 분야다.

정 박사는 3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장마 기간을 빼고는 주말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채집하고 있다. “채집활동은 위험하기도하고 체력적으로 부담도 되지만 곤충을 만나는 일이라 즐거워요. 미기록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그는 “곤충은 종족 보존이라는 본능에 따라 천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며 “작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숨쉬고, 먹고,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책을 쉽게 쓰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 곤충기에는 넓적다리마디를 ‘퇴절’, 종아리마디를 ‘경절’이라고 쓰는 등 어려운 용어가 많지만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말을 쉽게 풀어쓰고 사진도 많이 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우월하다며 곤충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곤충이 있어야 생태계가 조화롭게 돌아갈 수 있다”며 “인간과 곤충이 공존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글·사진=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