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대한민국의 출구는… ‘불확실한 세상’
입력 2010-04-15 17:21
불확실한 세상/박성민 외/사이언스북스
미래가 어찌될 지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확실성(uncertainity)’은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단어다. 세계 경제는 2008년 후반 전 세계를 강타한 국제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위기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태국 등의 정정불안과 중동 등의 끊이지 않는 분쟁, 국제 테러리즘의 기승도 국제 사회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2009년 유럽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현대 사회를 좌우할 키워드로 이 단어를 꼽았을 정도다.
한국사회도 불확실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회 구성원들은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세종시, 4대강 등의 첨예한 이슈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존재한다. 천안함 침몰사고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요인을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사례다.
‘불확실한 세상’은 국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10명이 불확실성이란 키워드를 공통 주제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불확실성은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과 기술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른 얼굴로 똬리를 틀고 있다.
정치 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정치의 불확실성에서 찾는다. 박 대표는 “한 나라의 행복지수는 그 사회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가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일상으로 일어난다”며 “해마다 입시 제도가 바뀌고 선거 때 마다 선거법이 바뀌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정치를 우리 사회 불확실성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정치가 법과 제도를 통해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창당과 이합집산이 되풀이되는 후진적인 정당제도, 불합리한 공천제도,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리더십의 부재 등으로 인해 오히려 불확실성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대중이 정보력에서 정치인들과 대등한 위치가 되고 정치가 대중의 공격에 취약해진 점도 ‘정치의 위기’를 앞당긴 요인으로 꼽힌다. 박 대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완전히 다른 정치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당분간은 한국인의 행복 지수가 올라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비관론을 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테러리즘이 횡행하는 속에서 증대되어 가는 핵위기 상황과 국제 금융 위기의 전망을 살펴보며 불확실성이 국제 정치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를 조망한다. 조 교수는 “현대의 국제 정치가 불확실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이성과 민주주의를 승인하는 근대성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실제로는 힘의 정치, 현실주의 정치, 국익 우주의 국제 정치의 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는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보면서 불확실성이 창조의 동력이며, 역동성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단, 불확실성이 순기능을 발휘하려면 공공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삶의 안정성을 꾀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보화가 가져온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성에 주목한다. 정보 기술 시대로 넘어오면서 거래와 결부된 불확실성은 많이 줄었지만 ‘승자 독식’ 구조라는 또다른 불확실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행위자 간의 사전조정이나 정부의 조정에 의해 이 같은 불확실성은 해소될 수 있다며 정부의 조정자적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이창익 한신대 연구 교수는 기성 종교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 힘을 잃고 역할과 권한,권력을 양보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분석했다. 김재영 이화여대 HK 연구 교수는 과학과 수학이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을 학문적으로 포섭하게 된 과정을, 김명진 사회과학센터 운영위원은 과학과 기술은 실험실 밖에서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치불안과 경제 위기, 전 지구적 기후 변동, 과학기술 자체의 불안정성 등으로 불확실성에 휩싸인 한국 사회가 활로를 찾아가는 논의의 물꼬를 트는 책이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