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한국경제 펀더멘털 높이 평가

입력 2010-04-15 01:00


무디스 국가신용등급 상향 배경·전망

지난달 26일 밤 10시. 백령도 부근 해역에서 침몰한 천안함 소식에 청와대가 술렁이는 동안 서울 명동 국제금융센터에도 긴박한 움직임이 있었다. 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경제부처 관계자들의 긴급회동이었다. 그러나 정작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해 입국한 무디스 실사단의 한국 체류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방문을 끝으로 연례협의를 마친 무디스 측은 그 시각 인근 조선호텔에 묵고 있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24일부터 2박3일간의 성공적인 협의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눌려버릴 수 있어 전전긍긍했다”며 “시장이 차분하게 반응한 덕도 있지만 이번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북한 리스크보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더 높이 평가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무디스가 천안함 사고에도 신용등급 상향을 결정하면서 국내 실물경제도 상당한 후광효과를 입을 전망이다.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의 국제신용도도 좋아져 외화자금 조달비용이 싸지고, 외국인 자금의 유입을 자극하는 등 투자 선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외환시장도 이를 반영해 원·달러 환율이 급락세(원화가치 급등)를 보였다.

무디스 등급 상향 배경=무디스가 밝힌 등급 상향 요인은 우리나라 경제의 위기 복원력(Resilience)이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 위기 국면에서 금세 복원할 수 있는 힘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허경욱 재정부 1차관도 “대개 복원하는 과정에서 재정이 망가지기 쉬운데도 재정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재정부는 무디스와의 이번 연례협의에 앞서 지난달 19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경제 설명회를 가졌다. 당시 허 차관은 가능성이 낮은 리스크 때문에 저평가돼 온 우리나라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검은 백조 리스크’(Black Swan·개연성이 희박하지만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사건을 상징)의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허 차관은 “상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검은 백조 리스크라고 하는데 일단 백조는 희다고 가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며 “외환위기 이전과 지금의 절대 비교와 등급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의 상대 비교 등을 많이 강조한 것도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기업과 민간 신용도 동반 상승=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 상향 직후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7개 공기업 신용등급을 ‘A2’에서 ‘A1’으로 상향 조정했다. 수출입·산업·기업 등 국책은행과 NH농협 외에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시중은행 4곳의 신용등급도 A1으로 한 단계 높아졌다.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의 신용등급 상승행진에 민간 기업도 후광효과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분석팀장은 “재무능력 등 판단 요건만 충족되면 신용등급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개별 기업의 후광효과 외에 선진국지수 편입 가시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오르는 분위기다.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덱스)와 WGBI(글로벌국채인덱스) 등 선진지수 편입도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증시 관계자는 “시장을 끌어올릴 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식과 채권시장의 선진시장 편입은 기대만으로도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화 강세요인”=선진지수 편입까지 내다보는 시장의 기대감에 증시는 달아올랐고, 환율은 급락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4.74포인트(1.45%) 오른 1735.33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11.70원(-1.04%) 급락한 1112.20원에 마감했다. 이는 2008년 9월12일 1109.10원 이후 최저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돈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에 환율 저점(현재 1110원선)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