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선교사 반애란 여사… 의지할 곳 없는 미혼모 품어 소망 가득한 자립의 길 밝힌다

입력 2010-04-14 19:06


한국 최초의 미혼모 시설인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애란원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임신으로 인해 가족과 학교, 직장 등 모두에게 배척당해 절망의 끝에 몰린 여성들의 손을 잡아주고, 건강한 출산과 산후조리를 돕고, 직업교육을 해 다시 당당한 사회인으로 되돌리는 귀한 사역을 반세기나 이어온 것이다. 미혼모 자녀 60% 이상이 입양되는 현실에서 애란원 입소자만큼은 80% 이상이 직접 양육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 앞에서 아직도 힘든 걸음을 하고 있다.

애란원은 미국 선교사 반애란(본명 엘리노어 반리롭·89) 여사에 의해 1960년 4월 10일 시작됐다. 남편 반피득(피터 반리롭·92) 전 연세대 교수를 따라 1959년 한국에 와 역시 연세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반 여사는 어느 윤락여성 출신 임신부를 도운 일을 계기로 미혼모 돕기에 나섰다. 그러나 막상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는 물론 교회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한 반 여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 여성들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이 여성들이 좋게 변화돼서 사회로 돌아간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 여사는 미국의 여러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해 받은 성금으로 현재 애란원 자리인 서울 대신동의 한옥을 구입, ‘은총의 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인근에 ‘희망의 집’ ‘기쁨의 집’ ‘신앙의 집’ 등을 더 만들어 윤락여성, 가출소녀, 미혼모자 등의 쉼터로 운영했다. 1973년에는 미혼모 보호시설로 전환됐다.

애란원 설립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반 여사의 막내딸 반미자(마사 반리롭·55)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는 직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집에서 회의를 자주 하셨는데 여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입소 여성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저는 어려서 그 여성들이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가졌는지 잘 몰랐지만 저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차가웠다. 애란원을 소개한 1970년대 한 신문 기사가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누울 곳이 생겼다…그렇다고 그 갸륵한 뜻을 받들어 마구 낳을 것이 아니라 더 한층 삶을 아껴야 할 것이다”라고 비꼬았을 정도다.

당시 미국 선교사로 반 여사와 함께 일하다 1976년부터 2년간 원장을 지냈던 수 라이스(75)씨도 이번 50주년 행사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조금도 문란하거나 나쁜 여성들이 아니었다”면서 “거의가 나쁜 사람들의 꾐에 빠진 순진한 소녀들이었다”고 전했다.

반 여사는 1977년 미국으로 돌아갔고 8년간 더 선교사로 일하다 은퇴, 지금은 남편과 함께 일리노이의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반미자씨는 “어머니는 휠체어를 사용하시지만 건강하시다”면서 “애란원 설립 50주년을 무척 기뻐하신다”고 전했다.

애란원은 1996년 모자복지법에 근거한 미혼모시설로 허가받았고 현재 대신동의 미혼모자 생활시설 외에도 임신 중 또는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를 위한 ‘모자의집’, 아기를 입양 보낸 미혼모 자립시설 ‘세움터’, 취업한 양육모자 자립시설인 ‘자립홈’, 위기 미혼모 종합보호기관 ‘나너우리한가족센터’ 등 5개로 운영된다.

한상순 원장은 “앞으로는 미혼모가 시설에 입소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모델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전하면서 “아직도 사회 및 교계에는 ‘미혼모를 도우면 미혼 출산을 조장한다’는 잘못된 편견으로 후원을 꺼리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