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고세욱] 19만 댓글, 천안함 댓글
입력 2010-04-14 19:38
“네 단독기사 댓글이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기사 게재 3시간 만에) 무려 1200개나 된다.”
지난달 9일 사회부 양진영 기자가 쓴 기사 “요미우리 MB ‘기다려달라’ 독도발언은 사실”의 네티즌 반응에 놀라 그날 저녁 9시쯤 양 기자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같은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날 1만개를 돌파한 댓글 수가 불과 6일 만에 10만개를 넘었다. 14일 현재 이 기사에 붙은 댓글은 19만4000건. 요즘도 하루 약 1000개 안팎의 댓글이 붙고 있다. 조회수 10만 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댓글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이 기사는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 성지순례(반드시 인터넷에서 봐야할 글) 코스로 통한다.
3월초 인터넷을 달궜던 ‘독도’ 기사의 바통을 3월말부터 천안함 침몰사건이 이어받았다. 본보 기사가 특종이었고 천안함 사건은 전 언론이 실시간 생중계하다시피 한다는 점이 다를 뿐 네티즌의 관심도는 엇비슷할 정도로 뜨겁다. 천안함 사고는 네티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미스터리 요소까지 갖추고 있어 댓글 수는 소소한 뉴스들을 모두 압도했다. 인터넷상에서 대한민국의 봄은 독도와 천안함이 장악했다.
두 뉴스에 붙는 댓글을 유심히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독도문제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음에도 네티즌들은 막무가내다. 본보 기사가 나간 뒤 포털사이트에 MB탄핵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와대는 “어떻게 대통령보다 일본 언론을 믿을 수 있나”고 한탄하지만 댓글에서는 “MB라면 그랬을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천안함 사건 초기 군의 자작설, 정부의 북풍기획설 등 각종 설이 떠돌았다. 대통령이 원인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고 군이 사고상황을 적극 설명하면서 의혹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불신의 골은 여전하다. 사고시각에 대한 의혹이 풀리자 군의 입막음 의혹이 일어나는 식이다. 일부 네티즌은 생존 장병들의 회견 내용조차 “군대에서 어떤 식으로 일처리하는지 잘 알죠?”라며 순수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 언론사 조사결과 국민 60%가 군의 천안함 관련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상당수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 정부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다는 수준이다. 갈수록 인터넷이 여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최근의 편향적인 댓글에 대해 정부가 억울해할 만도 할 것 같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악담에 정부 책임은 전혀 없는 걸까. 1년여간 인터넷뉴스부 기자로 있으면서 넷심 악화는 올해부터 두드러졌다고 판단한다. 광우병 파동 때 최악이었던 네티즌 여론은 대통령의 중도실용정책과 특히 교육개혁추진 이후 점차 우호적으로 변했다. 악의적 댓글이 없진 않았지만 “대통령 한번 믿어보자”는 반박글이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순 이후 대통령의 지지도가 50%에 이르면서 정권의 자세는 다시 꼿꼿해졌다. 소통하자던 진보세력을 “좌파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옥죄었다. 진보인사에 우호적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손봐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방송사 사장을 ‘쪼인트’ 까면서 구성원 물갈이를 추진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종교계조차 이념의 잣대로 평가했다. 취업현실도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몰상식한 일이 계속되자 젊은 네티즌들은 정부에 날을 세웠다. 저주의 댓글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천안함 사건의 의혹 확산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직도 국민과의 신뢰 구축에 고전하고 있다”고 평했다.
정부는 G20정상회의에 이어 핵안보정상회의까지 국내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 간 불신이 계속되면 대외적 쾌거는 빛바랠 수밖에 없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하기 전 자신의 통역에게 써 준 휘호는 ‘통정명백광조세계(通情明白光照世界:명백히 소통하면 세상이 밝아진다)’라 한다. 집권층이 요즘 가슴깊이 새겨야 할 문구다.
고세욱 인터넷뉴스부 차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