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웰빙을 넘어 웰다잉 준비를

입력 2010-04-14 17:30


디모데후서 4:6~8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하루의 삶 속에서도 많은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지나칩니다.

특별히 동양적인 사고는 죽음을 금기시합니다.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죽음을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멋진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원은 공동묘지입니다. 그리고 교회 지하에 가면 대부분 묘지가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멀리 있는 실체로 보지 않고 항상 가까이 있는 친구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든지 간에 죽음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웰빙 아파트, 웰빙 음식, 웰빙 운동, 웰빙 여행, 웰빙 산업에 이르기까지 온통 웰빙입니다.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옵니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 김달진님은 “60세에는 해마다 늙고, 70세에는 달마다 늙고, 80세에는 날마다 늙고, 90세에는 시마다 늙고, 100세에는 분마다 늙는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세월 따라 늙어가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죽음이라는 그림자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바울 사도를 만납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7∼8절)

어떻게 사도 바울은 죽음 앞에서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육신의 웰빙이 아닌 영적인 웰다잉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웰빙을 넘어서 웰다잉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잘 살다는 것은 곧 잘 죽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렸다 할지라도 죽음의 순간에 후회하는 인생, 죽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인생이 된다면 그것은 웰빙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죽음 앞에 직면하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웰다잉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요, 멋진 마무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웰빙을 넘어 웰다잉의 삶으로 이어지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양인순 목사 (성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