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명인전 예선 결승 ● 이세돌 9단 ○ 박정환 7단

입력 2010-04-14 17:35


처음 바둑을 시작했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언제부터 이 어려운 수법들이 내 몸과 머리에 들어와 이해되기 시작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 그저 놀이처럼 시작했던 바둑이라 나로썬 그 입문과정을 기억할 수가 없다. 한 지인이 바둑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조금씩 알려주고 있는데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바둑의 기술을 알려주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갓 입문한 그 친구에게 시험 삼아 기보를 놓아보게 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수읽기 보다 그것이 더 쉬웠던지 의외로 재미있어하며 제자리를 잘 찾아 놓는데, 초보의 눈으로도 조금 평범하지 않다 싶은 수를 잘도 짚어내 신기했다. 몇 판 일류들의 바둑을 놓아보며 평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폼이 제법 그럴싸하다.

오늘 그 친구가 놓아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수가 좋은 수였기에 그 바둑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이세돌 9단과 박정환 7단의 대국. 최근 최상종가를 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승부가 될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그 승부를 볼 수 있게 됐다.

초반 우하귀에서 신형이 나왔는데 흑이 조금 포인트를 올렸다. 두 번째 싸움은 좌상귀부터 다시 시작된다. 두 기사 모두 수읽기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 검토실에선 한 수 두어질 때마다 “아∼” 하며 검토 모양을 쓸어내고 다시 만든다.

실전도 백1에 일반적인 발상이라면 그냥 흑4로 뛰었겠지만 실전의 흑2가 좋은 수였다. 중앙의 압박과 좌상귀에 얽혀있는 흑과 백의 수상전을 맛보기로 하는 박력 있는 수다. 백은 백3을 선수하고 수상전 때문에 귀에 백5로 받을 수밖에 없을 때 참고도 흑1로 또 절묘한 맥 점을 찾아낸다.

사실 전체적인 대세로 볼 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맥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부분적으로 봤을 때는 생각하기 쉽지 않은 좋은 맥이다. 백은 꼼짝없이 2∼8까지 고분고분 한 점을 먹을 수밖에 없고 흑은 중앙 9로 뛰어 두텁게 할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이 후에도 만만치 않은 형세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 벌어졌지만 몇 번의 대세점을 놓친 백은 결정적인 몸싸움에선 힘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로써 이세돌 9단이 또 한판의 연승을 추가하며 명인전 본선에 올랐다.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