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心과 文情, 조선文人들의 향기를 맡다… 인사동 공화랑서 4월26일까지 희귀서화 공개

입력 2010-04-13 19:03


‘난초를 그리는데 정해진 법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법이 없을 수도 없다. 붓질마다 왼편으로 굴리고 세 번씩 굴리는 것이 묘가 된다’(寫蘭不可有法 亦不可無法 筆筆左轉三轉爲妙)

추사 김정희(1786∼1886)가 ‘묵란도’(墨蘭圖)에 쓴 글씨다. 왼쪽 여백에 자신만의 법식을 갖추고 있는 난을 그렸다.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필선에서는 절제의 미학이 느껴진다. 난이 시작되는 시점 바로 옆에 阮堂(완당)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가을 하늘 아래 음식이 가득 차려진 주안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고수의 장단에 맞춘 명창의 소리를 듣고 있다. 양반들은 얼굴이 크게 묘사되고 나머지는 작게 그려졌다. 양반과 기녀가 어우러진 19세기 후반 작자미상의 ‘야유풍속화’(野遊風俗圖)는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케 한다.

조선시대 문사들의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음미할 수 있는 전시가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열린다. ‘문심(文心)과 문정(文情)’이라는 타이틀로 개최되는 전시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희귀서화 60여점이 공개된다.

이번에 첫선을 보이는 겸재 정선(1676∼1759)의 ‘황려호’(黃驪湖)는 문인의 심사가 투영된 이상화된 경치를 남종화풍으로 그린 것으로 겸재가 1731년에 그린 ‘서교전의’(西郊餞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739년에 그린 ‘육상묘도’(毓祥廟圖)와 유사하다. 황려는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한강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표암 강세황과 함께 조선후기 문인화를 이끌었던 현재 심사정(1707∼1769)의 ‘월매도’(月梅圖)는 온아한 빛을 머금고 있는 매화를 힘차고 역동적인 필치로 묘사한 수작이고, 영조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화재 변상벽(1730∼?)의 ‘고양이’ ‘토끼’ ‘암탉과 병아리’ 등은 봄날의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題草衣洵所藏石屋詩帖)은 제자인 초의 의순이 소장한 석옥시첩에 남긴 글로 ‘다산시문집’에는 누락된 귀한 자료이다. 색채와 음영없이 백묘법(白描法)으로 7마리의 말과 인물을 그린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군마도’(群馬圖)도 이색적이다.

공창호 공화랑 대표는 “글씨며 그림이며 선비의 마음이 화선지에 뿌려지고 도원의 이상향이 먹물로 춤을 춘다”면서 “서기로 가득한 서화를 모으고 애호가들을 불러 모아 봄의 향기를 함께 누리고 싶다”고 전시의도를 밝혔다(02-735-993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