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이상한 한국의 앨리스

입력 2010-04-13 18:57


주말에 찾은 서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발견했다. 최근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때문인지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읽다가 책장 구석으로 밀어버린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 덤볐다.

책은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동화 속에서 기기묘묘한 캐릭터들이 등장할 때마다 주인공 앨리스에게 교훈이 되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그 내용들이 아이들에게는 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 것은 아이들을 너무 무시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에는 체셔 고양이가 등장한다.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기서부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말해 주겠니? 그렇지만 미친 사람들 속으로 가긴 싫어.” 그러자 고양이는 “오, 그건 피할 수 없어. 여기 있는 우린 모두 미쳤으니까. 개는 화가 나면 으르렁거리고, 기쁠 때는 꼬리를 흔들어. 그런데 나는 기쁠 때는 으르렁거리고, 화가 나면 꼬리를 흔든단다. 그러니까 나도 미쳤지.”

주변 것을 먹으면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는 앨리스는 이런 말을 한다. “아 맙소사! 내가 다시 커져야 한다는 것을 잊을 뻔 했네! 내가 무언가를 먹거나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그게 ‘무엇’이냐는 거야.”

한편 공작부인은 앨리스에게 “쯧쯧, 아이야! 모든 것에는 교훈이 있단다. 네가 찾기만 한다면. 그 교훈이란 것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게 바로 사랑’이란다”며 충언을 하기도 한다.

영국 극작가 루이스 캐럴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어떤 목표든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등 삶의 본질을 말한다.

작가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본 원리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이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그 철학적 사고가 풍부해지는 것이 진정한 마음의 풍요에 이르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옛 선조들은 어릴 때부터 소학을 배우며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삶의 근본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어떤가. 한 달에 수십만원 하는 학원비를 내고 쪽집게 고액과외를 하거나 조기유학을 떠나는 일이 예사다. 대학마저 인문학과 철학보다는 상경학에 비중을 둔 취업준비 기관으로 전락했다

최근 인터넷에 한 학생이 서울 명문대의 인문학과와 서울권역 대학의 상경계열 학과 중 어디로 갈 것인지가 고민이라는 글을 올리자, 누리꾼은 명문대로 입학해서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라는 댓글을 당당하게 다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 앨리스가 지금 나타나면 어떨까. 자신이 모험한 나라보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더 혼란스럽고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는지.

이혜경 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