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글로벌 경영 돛 올린다-(1) 아시아 맹주를 꿈꾼다] 홍콩·싱가포르에 ‘영업 거점’… 中등 아시아 본격 공략

입력 2010-04-13 21:45


지난해 8월 삼성증권은 ‘사고’를 쳤다. 홍콩 금융 중심가에 1억 달러를 들여 투자은행(IB)센터를 세웠다는 소식은 국제 금융계에서 화제가 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거대 IB조차 몸을 사리던 때였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IB 업무를 위해 현지 인력까지 선발하고 전담 조직을 출범시켰다. 대부분 현지 사무소 위주로 운영되던 방식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발 빠르게 해외로 나가고 있다. 금융 위기가 남긴 상처로 국제 금융시장이 움츠리고 있는데도 해외 진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홍콩·싱가포르를 ‘베이스캠프’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은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급감했다가 2007년 이후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 해외 점포 수는 97년 말 471개에서 2000년 말 209개로 줄었지만 2007년 말 253개, 지난해 말 314개로 늘었다. 증가세의 중심에는 금융투자회사(증권, 자산운용 등)가 있다. 금융투자회사의 해외 점포 수는 2006년 43개에서 지난해 96개로 배 이상 늘었다.

증권사가 앞 다퉈 해외 진출을 서두르는 데는 아시아 지역 맹주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형 IB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중국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 공략이 첫 걸음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증권 박준현 사장은 홍콩 IB센터 설립 직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금융회사가 수습에 바쁜데 이들이 아시아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나가서 터전을 닦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접하면서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고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잡았다”고 강조했다.

증권사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주력 부대’를 둔 뒤 중국, 대만,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을 전방위로 공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출 국가는 과거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위주에서 2007년 이후 중국, 베트남 등 신흥시장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2007년 이후 신설된 점포 수 127개는 중국(33개), 베트남(22개), 홍콩(9개), 싱가포르(8개) 등에 몰렸다.

싱가포르에 글로벌 IB 영업거점을 만든 우리투자증권은 중동까지 넘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부터 IB 사업부에 중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진출 전략을 짜고 있다. 올 들어 인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금융회사와 잇따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베트남 현지증권사인 비엔비엣증권(CBV)을 인수한 데 이어 조만간 자산운용사인 탐롱메리츠투자신탁 지분을 사들일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중동, 말레이시아 등 오일머니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베트남 현지 증권사 인수도 추진 중이다.

또 국내 증권사들은 무리한 영역 확장보다는 신흥시장에 진출해 꾸준하게 현지 영업력을 높인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점포는 사무소 형태 진출이 135개(43.0%)로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지법인 설립(114개, 36.3%)이 늘고 있다.

삼성증권은 13일 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롯본기에 지점을 열고 일본 기관투자자 잡기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미래에셋증권은 중국을 핵심 전략지역으로 정하고 홍콩 현지법인을 강화하고 있다. 2007년 48억원으로 출발한 홍콩법인의 자본금은 2361억원까지 늘었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홍콩 영업을 다시 시작한 뒤 서울반도체 유상증자 자금 2847억원을 싱가포르 국부펀드에서 유치하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홍콩을 전진기지로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영업망을 확대할 방침이다.

동양종금증권은 올해 홍콩 현지법인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하나대투증권도 홍콩에 현지법인을 세울 예정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베트남, 일본을 중심지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증권은 상하이에 투자자문사를 설립했고, IBK투자증권은 라오스 기업공개(IPO) 시장에 뛰어들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합작회사, 현지법인 등을 세우며 이미 연락 사무소 수준을 넘어섰다. 주식 위탁매매, 기업공개, 인수합병 등 본격적인 IB 업무에 뛰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