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폴란드 슬픔으로 하나되다… ‘카틴의 비극’ 분열 상징에서 화합 상징으로

입력 2010-04-13 18:19

“카틴의 비극이 러시아와 폴란드를 뭉치게 하고 있다.”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1940년 2만2000명의 폴란드 엘리트 인사들이 학살된 카틴 숲은 지난 70년간 러시아와 폴란드 간 분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카틴 숲 학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사망이라는 ‘새로운 카틴’은 빠른 속도로 양국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13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러시아 국민들의 엄청난 추모 열기가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는 ‘우주 비행사의 날’인 지난 12일 수도 모스크바 곳곳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주러시아 폴란드 대사관과 사고 현장인 스몰렌스크 지역에는 수백명의 러시아 국민들이 꽃과 촛불을 갖다놓으며 슬픔을 함께했다.

러시아 정부 기관지인 로시스카야 가제타지는 “우리의 공통된 슬픔”이라고 묘사했고, 독립언론인 노바야 가제타지도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며 폴란드 국민들을 위로했다.

앞서 한 러시아 방송은 11일 카틴 숲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카틴’을 방영하기도 했다.

러시아 지도부의 움직임도 신속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사고 직후 주러시아 폴란드 대사관을 찾아 “우리는 폴란드 국민들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곧장 사고 현장을 찾아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끌어안으며 철저한 사고 원인 조사를 약속했다.

한편 러시아 관제사와 폴란드 조종사 간 언어 문제와 카친스키 대통령의 착륙 압력이 폴란드 전용기 추락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사고 여객기와 마지막으로 교신한 러시아 관제사 파벨 플루스닌은 “폴란드 조종사의 러시아어가 서툴러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숫자를 알아듣기 힘들어 사고 여객기의 고도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레쉐크 밀레르 전 폴란드 총리는 “대통령이 그곳에 몹시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조종사가 위험을 감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 전문가 빅토르 티모쉬킨은 이를 ‘VIP 탑승객 증후군’이라고 전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