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년, 어제와 오늘]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4·19 민주혁명 성공 세계 학생파워 부상 도화선”

입력 2010-04-13 18:19


이기택(7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13일 서울 장충동 민주평통 사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도입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 학생들에 의해 4·19 민주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1960년대 전 세계적으로 ‘스튜던트(학생) 파워’가 부상하는 데 도화선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60년 고려대 상대 학생위원장으로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주변의 추대로 그는 올해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이 부의장은 “요즘 국격, 국격 하는데 50년대 영국의 한 일간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었다”며 “그랬던 한국에서 민주혁명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되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국격이 크게 신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4·19혁명의 의의를 되새기고 확산시키는 것은 우리의 국가 브랜드를 고양시키는 일과 맞닿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의장은 또 4·19혁명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4·19정신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어선 안 될 부정과 모순을 타파하는 데 있다”며 “한·일회담 반대를 위한 6·3사태나 87년 6월항쟁도 민주주의 진원지인 4·19혁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세대 간 및 지역 간 갈등,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일들 역시 4·19정신 구현과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유당 정권은 멸공과 반공만 내세워 남북 대립을 키웠지만, 4·19혁명 당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처음 나왔듯 한반도의 모순인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 또한 4·19정신에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일각에서 혁명 주체들이 정권을 잡지 않았고, 또 1년 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에 ‘미완의 혁명’이라고 평가하는 데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그는 “정권 쟁취라는 권력의지 없이 순수하게 민주적 질서 회복을 위해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공적인 민주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쿠데타 세력이 ‘민주적 정통성 결여’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늘 국민의 눈치를 봤었다”며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매진, 산업화라는 결실을 맺은 것도 4·19에서 그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4·19혁명의 의의를 알리는 당국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그는 “기념일인 4월 19일을 국경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며 “교과서에서도 4·19혁명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사건으로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껏 국회의원 일곱 번 했던 일보다 진달래꽃 만발한 그해 4월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갔던 게 더 고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