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년, 어제와 오늘] 그때 그 주역들, 지금 어디서 뭐하나…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일부는 아직 활동
입력 2010-04-13 18:21
2회:우리 시대 4·19세대 리더들
1960년 4월 유난히 청명했던 어느 봄날. 거리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에 맞서 ‘자유 민주 정의 통일’을 외치던 젊은이는 이제 칠순을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완의 혁명 4·19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고, 혁명 주역들 역시 좌파와 우파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른 시일 내에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 ‘4·19세대’가 있었다.
◇정치권에선 대부분 떠나=이미 70대를 넘어섰거나 막 들어서려는 그들이기에 현역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때 30명 가까이 국회에 등원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당장 18대 국회의원 중엔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유일하다.
이 의원은 4·19혁명 당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1학년이었다. 그는 13일 “선거 등 정치 제도는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법질서 무력화를 민주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자율적인 법과 질서 확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93년 김영삼 정부가 처음 4·19를 ‘의거’에서 ‘혁명’으로 인정하고 수유리 묘지를 국립 4·19민주묘지로 격상시킬 때 청와대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이 의원은 현재 4·19혁명 50주년기념사업회장을 맡아 광화문에 기념 조형물 건립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이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이경재 전 의원이 YS의 대변인이었다면 김 전 의원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 속한다. 김 전 의원은 “박정희 군부 독재 시절 훌륭한 동지, 선배들이 변절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나는 미국으로 망명을 가는 바람에 그런 강요를 덜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정치권에 발을 들였던 4·19세대의 역사는 오욕으로 점철돼 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우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17대 총선 출마에 실패하고 한국마사회장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윤식 전 의원은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며 변절 논란에 휘말렸다. 동아대 재학 때 시위에 참여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까지 지냈지만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려 사법처리되는 수모를 겪었다. 중동고 3학년 신분으로 고교생 시위를 주도했던 설송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정계를 떠났다.
◇일부는 왕성한 활동 중=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는 4·19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이던 이세기 전 의원은 ‘기성 독재의 최후 발악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로 시작되는 선언문을 읽었다. 서울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이 전 의원은 현재 한중친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4·19는 동료 186명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역사의 전진”이라며 “늘 역사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 왔다”고 술회했다.
그는 “4·19를 계기로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고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며 “이후 통일부 장관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으로 있으면서 통일 문제에 앞장서 왔다”고 덧붙였다. 당시 고려대 3학년이었던 이재환 전 의원은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경제계에서는 롯데관광개발 김기병 회장과 경동제약 유덕희 회장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4·19세대다. 김 회장은 한국외대 3학년 학도호국단 부위원장으로 있었고, 유 회장은 성균관대 학생운영위원장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함께 4·19혁명기념사업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91년 4월혁명 정신을 계승하고자 시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만든 ‘4월회’ 회원이다. 유세희 4월회 회장(한양대 명예교수)은 “그간 4·19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지난 50년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위대한 시간이었다”면서 “4·19정신을 바탕으로 앞으로 선진 민주주의 문화의 생활화와 국민 통합을 이루는 희망의 50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