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닥터 송의 사이콜로지 송’ 진행 송형석 정신과 원장
입력 2010-04-13 17:27
“가요 속의 화자를 환자로 보고 심리상태 등 진단하면 웃음 터지죠”
‘무한도전’ 멤버들의 정신을 분석한 송형석(40) ‘마음과마음 정신과’ 원장이 이번에는 가요 속 화자(話者)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나섰다. 엠넷의 ‘엠넷라디오’(평일 오후 9시) ‘닥터 송의 사이콜로지 송(psychology song)’에서 인기가요를 심리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12일 서울 홍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 원장은 “정신과 의사는 제3자 입장에서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해주는 안내자다. 가요 속의 화자도 환자로 생각하고 분석에 임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송 원장은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챠우챠우’ 속 화자를 환청환자로 진단했다.
“노래를 보세요. 제가 가요 속 화자에게 ‘요즘 어때요?’라고 물으면 그는 ‘자꾸 (너의) 목소리가 들려요. 자꾸 들려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제 해석을 사람들은 개그로 받아들이지만 저는 환자를 상담하는 것처럼 노래를 분석해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타브라’ 속 화자는 강단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소심한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뮤직비디오에서 가수가 진하게 화장하고 도도하게 째려봐서 노래 자체가 왠지 센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가사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 여자는 굉장히 소심하다는 걸 알게 돼요. 남자하고 헤어졌는데 할 수 있는 게 뒤에서 주문 외우는 것 밖에 없는 거잖아요. 화가 나서 자기 혼자 주문을 외우는 심성은 굉장히 방어적이죠.”
송 원장의 해설은 듣는 사람이 무릎을 치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또한 기존의 해석과 정반대의 내용도 나와 반전의 재미까지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노래 가사에서 포인트 혹은 단서를 잡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석한다. 또한 설명할 때는 매우 진지하게, 마치 진짜 환자를 앞에 두고 다루듯 말한다”면서 “그런 모습에서 ‘빵’ 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양’의 ‘나만 바라봐’는 가사 내용이 직선적이어서 누구나 듣고 해석할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은 “내가 바람을 펴도 너는 절대 피지 마”라고 말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송 원장은 “이 남자는 아주 뻔뻔한 사람이다. 분명 다른 여자를 사귀면서도 이 여자에게 ‘넌 나의 전부’라고 말할 사람이다. 가사 내용이 그렇다. 또한 뻔뻔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투애니원(2NE1)’의 ‘아이 돈 케어’는 말 한 마디에서 단서를 찾아 정반대의 해석을 이끌어 낸 곡이다. 화자는 남자친구에게 ‘니가 어디에서 뭘 하던 이제 정말 상관 안할 게 비켜줄래’라고 말한다. 또한 ‘이제와 울고불고 매달리지마’라며 강하고 쿨한 모습도 보인다. 노래 제목에서 보듯이 화자는 이제 아무도 상관 안하는 ‘쿨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송 원장의 해석은 달랐다.
“노래 가사 속에 ‘매일 하루에 수십번 꺼져있는 핸드폰’이란 문구가 있지요? 그게 바로 여자가 그만큼 전화를 한 것입니다. 남자가 바람을 폈어요. 하지만 그만큼 여자도 남자한테 집착해온 거에요. 남자가 자기를 속이려 든다며, 남자의 모든 것을 알려고 계속 전화를 하는 거죠.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사람. 이 여자가 그럴 수 있습니다. 화자가 남자를 집착해왔고 남자가 자신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여자는 괴로워서 아예 남자를 떠난 것이지요.”
‘소녀시대’의 ‘오!(Oh)’ 속의 화자를 두고는 실제 존재하는 소녀라기보다는 성인 남성의 판타지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송 원장은 “소녀가 ‘무정한 사람아’ ‘철없는 사람아’라고 말하는데, 이게 10대 소녀가 흔히 쓰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누나처럼 보이려고 하는 자신이 철없는 것”이라면서 “남성이 바라는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작 송 원장이 즐겨듣는 노래는 패티김, 심수봉과 같은 수십 년전 가수들이다. 송 원장은 “심수봉 노래 속 화자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떠난 배를 기다리는 항구 같은 인내심이 있다. 요즘 가요 속 화자들과는 너무나 다르다”고 비교했다.
“옛날 노래들 보면 ‘사랑’이란 말이 많이 나와요. 사랑은 아름답고, 끝없다며 관념화해서 노래를 하지요. 하지만 최신 가요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난 널 사랑해’가 아니라 ‘내 귀에 달콤한 캔디’를 달라고 구애하지요. 그만큼 젊은이들에게 ‘사랑’이란 관념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더 중요하게 변한 것 같아요.”
충동적이고 집착적인 가요 속 화자들에게 내리는 송 원장의 진단은 무엇일까?
“가사의 대부분은 너 때문에 상처받지 않겠다, 이제 난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났다는 쿨한 모습 위주예요.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쉽게 상처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는 자기 연민도 있고 복수심도 있고 타인에 대한 동정도 남아있어요. 때문에 ‘이미 극복했다’ ‘복수할거야’라고 한 가지 생각만 해서는 안돼요. 상대방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을 알고, 내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겠지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사랑하세요.”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