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아키타현 거주 4명의 일본인, 과거사를 말하다
입력 2010-04-13 23:08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③ 아키타현 대표 징용 기업 도와홀딩스
아키타(秋田)현에 거주하는 일본인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도가시 야수오(75), 이토 다모쓰(75), 쇼지 도키지(70), 차타니 주로쿠(69)씨. 교사 출신으로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연구해온 시민단체 회원(도가시·이토·쇼지)이거나 민족예술연구소 연구원(차타니)이다. 이들은 도와홀딩스 같은 일본 기업과 정부가 조선인 강제 징용에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월 28일 아키타현 오다테(大館)시 인근 고깃집에서 네 할아버지의 ‘과거사 수다’가 시작됐다. 아울러 한국에서 취재진이 왔다고 불고기 등을 푸짐하게 주문했다.
한국과의 인연
△도가시=2002년 한국을 방문한 얘기부터 해볼까요.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갔습니다. 저와 이토, 쇼지씨 이렇게 세 사람이요. 고문현장 등 전시된 걸 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 ‘일본어 쓰면 안 되겠다. 잘못하면 여기서 한 대 얻어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지=서울 서대문형무소가 가장 놀라웠어요. 우리가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를 차례로 방문하니 이런 형태의 가이드를 처음 맡은 한국 여성이 “이상한 일본 할아버지들”이라고 하던데요. 가이드는 역사적 배경 설명도 제대로 못했어요.
△차타니=고등학생 때 근대 신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사진과 브로마이드를 보고 반했습니다. 그녀는 조선 전통무용을 국제적 무용으로 만들려고 했었죠. 그 점이 최승희를 더 아름답게 했습니다. 이렇게 생긴 관심이 전공에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국립 가나자와 대학에서 조선사, 그중에서도 고려사를 전공했습니다.
△이토=친구가 아키타현 하나오카 광산에 나를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 오락 시설 ‘교락칸’이 폐쇄됐을 때죠. 거기서 안타까운 일(하나오카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최근에는 조선사 관련 책도 읽었습니다(1945년 6월 30일 하나오카 광산에 강제 동원된 중국인 노무자 800여명이 폭압에 맞서 봉기했다가 400여명이 숨진 게 하나오카 사건이다. 도와홀딩스 전신 후지타구미가 당시 하나오카 광산을 소유했다).
강제동원 추적
△차타니=저는 대학 졸업 후 이시카와현에서 고교 교사를 하다 1969년 아키타현에 왔습니다. 이곳 민족예술연구소에서 전통무용과 민요 등을 연구하는 게 제 주된 일이고요(연구소 소장도 지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아키타현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명부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누가 어디서 얼마 동안 무슨 일을 했고, 공탁금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알아내는 일이죠. 정리한 명부를 한국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에 전달했습니다.
△도가시=저와 이토, 쇼지씨는 ‘하나오카에서 일본과 중국이 다시는 싸우지 말자고 기록한 우호비를 지키는 모임’(花岡の地·日中不再戰友好碑をまもる會) 소속입니다. 전체 회원은 60명 정도입니다. 우리 셋은 아키타대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습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요. 우리는 하나오카 사건 관련 유골 발굴 및 추모 활동을 해왔습니다. 요즘에는 이곳에 견학 온 외지인과 학생들을 상대로 현장을 안내하고 강제 징용의 참혹함을 설명하는 일을 합니다.
△쇼지=교사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하나오카 사건과 강제 연행 문제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1967년 교사가 됐는데 6년쯤 뒤부터 교과 내용에 이 부분을 넣었어요.
도와홀딩스의 책임
△쇼지=도와홀딩스는 요즘 리사이클링을 해요. TV, 냉장고 등 폐전자제품에서 금속을 추출합니다. 유해물질을 배출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입니다.
△도가시=하지만 강제 동원과 관련해서는 좋은 기업이 아닙니다. 도와홀딩스는 ‘당시는 국책기업이어서 직접 책임은 없다’고 이야기해요. 기업도 일본 정부와 똑같은 비율로 전쟁 책임이 있는데 말이죠.
△차타니=일본 대기업 상당수가 국가와 결탁해 회사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도와홀딩스도 그중 한 곳이고요. 분명히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기억 나는 활동
△차타니=1991년 전남 영암군 군서면을 찾은 일이 있어요. 조사현(1913년생)씨라고 아키타현 센다츠 발전소에 강제 징용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한테 아키타현을 아느냐고 여쭤봤더니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자와 호수는 기억나느냐고 물었는데 그것도 모른대요. (다자와호 인근) 센다츠 발전소는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어요. 자신이 일한 작업장만 기억에 남았던 거지요. 그 후로 생존자와 유족을 5명 더 만났어요.
△도가시=91년 도와홀딩스 도쿄 본사에 가서 항의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오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라는 취지였죠.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요구했지만 기업 측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국인 유골 발굴에는 재일조선인연맹 아키타현 지부 소속 조선인들도 참여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책무
△도가시=일본이 한국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민비 살해는 대부분 일본인이 몰라요. 한 나라 왕비를 살해한 것은 굉장히 커다란 일인데 일본 정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조선 역사를 배우는 것은 일본 근대사를 다시 배우는 것과 같아요.
△차타니=우리 세대는 전쟁에 관해 교육을 받았어요. 한국에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 젊은이들은 이 문제에 관해 지식도, 의견도 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요. 더 무서운 것은 일본 우익이 ‘사죄는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토=일본 정부는 아직도 한국 정부를 낮게 보는 것 같습니다. 군사 예산은 펑펑 쓰면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오다테(아키타현)=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