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장병 식사 챙기고 생존자 기 살리고… 큰 슬픔 앞에서 더 빛난 실종자 어머니 母性

입력 2010-04-12 22:05

11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법당의 점심 식탁에는 특별한 요리가 올랐다. 노란색 지단과 주황색 당근, 초록색 시금치가 버무려진 ‘엄마표 잡채’였다. 실종자 김선호(20) 상병의 어머니 김미영(52)씨가 평소 이곳 식당을 이용하는 병사들을 위해 손수 100인분의 잡채를 요리한 것이다.

아직 아들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해 애태우고 있지만 맛있게 잡채를 먹는 병사들을 보는 김씨의 표정은 밝았다. 김씨는 “모든 수병들이 다 아들 같아서요.…제가 여기를 떠나면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잖아요”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의 이면에 어머니들의 모성(母性)이 빛나고 있다. 어머니들의 따뜻한 손길과 지혜로운 대처는 비극적인 사고 수습과정 고비마다 깊은 울림을 줬다.

자식이 아닌 다른 병사들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챙기는 마음 씀씀이가 드러난 건 잡채만이 아니었다. 가장 돋보였던 건 지난 8일 “살아 돌아와 고맙다”며 생존 장병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은 어머니들의 만남이었다. 사고 당시 악몽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생존 장병 전원을 환자복 차림으로 TV카메라 앞으로 내몬 국방부의 대처와 비교돼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남의 자녀까지 포용하는 모성은 합리적으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지난 3일 수색 및 구조작업을 중단하고 선체 인양에 힘을 쓰자며 내린 실종자가족협의회의 결단에도 어머니들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어머니들은 한주호 준위의 순직과 어선 98금양호의 침몰을 보며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당시 실종 장병의 어머니들은 “내 자식을 살리자고 남의 자식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무리한 구조활동을 바랄 수는 없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모성은 또 슬픔을 이겨내고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됐다. 지난 3일과 7일 시신으로 발견된 고 남기훈(36) 상사와 김태석(37) 상사의 아내들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였다.

남 상사의 아내 지영신(35)씨는 실종자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임시 숙소가 아닌 평택 해군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세 아들 중 초등학생인 둘을 꼬박꼬박 등교시켰다.

평택=이경원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