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승렬] 그리스 적자와 유로존 국가의 대응
입력 2010-04-12 18:06
유럽연합은 작년 말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서 정치공동체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 초 불거져 나온 그리스 재정 위기는 새로운 유럽연합 집행부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 적자 원인은 여럿이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취약한 자국 내 경제구조와 세계적 경기침체,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약한 정부와 강한 노조 사이에 맺어진 연금 제도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리스 국내 문제가 유럽연합에 제기한 문제는 유로존 국가의 재정 위기를 유럽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여부다.
그리스 문제 해법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독일과 프랑스를 축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로존 국가 중 그리스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국가는 경제 대국 독일이지만, 자국민의 세금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안에 대한 국내 여론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독일은 5월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어 기독교민주당 정부는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IMF와 유로존 국가들이 병행하여 그리스를 지원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유럽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유럽연합의 정체성을 제고하고 보다 발전된 유럽연합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獨·佛의 상반된 입장 노출
유로는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그 발단은 냉전 해체와 독일 통일이었다. 서유럽 입장에서 볼 때, 동구권 붕괴와 독일의 통일은 독일의 세력 확장을 초래하고 과거 나치 독일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는 위기로 보였다. 당시 서독 기독교민주당은 이웃 국가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유럽통합의 틀 안에서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유로의 전격적인 도입을 제안하였다. 독일이 화폐·재정정책 주권을 서유럽 국가들과 공유한다면 독일의 단독 행보는 억제될 수 있고, 유럽공동체는 더욱 강고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지지 속에서 유로가 전격적으로 도입되었고, 독일은 평화적으로 통일되었다.
하지만 유로를 안정적 화폐로 유지하기 위해 각국은 그 가치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확대재정 정책을 억제해야 했다. 독일은 구동독의 재건을 위해 확대재정 정책을 펴야 할 상황이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구동독의 느린 재건과 이에 따른 독일의 내적 갈등은 평화적 통일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통일의 주역인 기독교민주당 정부의 계산 안에 있었지만, 이번 그리스 사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인들의 입장에서 동독 재건 문제는 자국 문제이기에 감수할 수 있었겠지만, 안정적 유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의 적자 문제까지 자신들의 세금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로 끝나지 않는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재정적자가 심각하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유럽통화기금(EMF) 설립이나 유럽중앙은행세 도입이 고려되고 있다. 논의 끝에 지난 3월 26일 유럽 정상들은 독일의 병행 지원안을 가결했고, 프랑스도 수용했다. 이로써 자칫 커질 수 있던 유럽연합 내부 갈등은 해소되었다. 프랑스 안이 유럽연합 입장에서 최선책이라면, 독일 안은 차선책이다.
유럽 통합 후퇴하지 않아
유럽은 차선책을 선택함으로써 내적 갈등을 억제하고 조금씩 통합을 향해 진전해 왔다. 1990년대 구유고 사태 때도 이러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되어 유럽통합이 전진하고 있을 때 구유고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처하는 데 유럽연합 국가들은 분열했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공동 노력으로 사태가 정리되었다. 이 때문에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공동외교안보정책은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통합은 후퇴하지 않았다. IMF와 유로존 국가들의 공동 지원이라는 그리스 해법은 유로를 강화하여 유럽 정체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겠지만, 차선책을 선택했던 유럽통합의 여정에서 볼 때, 오히려 현실적인 해법인 셈이다.
김승렬 경상대 교수(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