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하얀 개나리’ 미선나무

입력 2010-04-12 18:06


진달래 중에 흰진달래가 있는 것처럼 개나리 중에도 하얀 개나리가 있다. 식물학에서는 ‘미선나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다. 미선(美扇)의 선(扇)은 부채를 가리키는 말인데, 미선나무의 열매가 전통 부채를 닮은 모습이라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네 장의 꽃잎으로 피어나는 꽃은 물론, 자라나는 과정 등 대개의 생태적 특징이 개나리와 같고, 꽃 색깔이 하얗다는 점만 다르다. 미선나무의 하얀 꽃은 개나리꽃과 마찬가지로 4월 초 쯤 초록 잎이 돋기 전에 피어난다. 군락을 이뤄 자라는 미선나무가 가지 전체에 순결의 빛깔로 하얀 꽃을 줄줄이 피웠을 때의 광경은 쉬 잊히지 않는 장관이라 할 만하다.

열매도 독특하다. 지름 2.5㎝ 쯤으로 동그랗게 맺히는 열매는 좌우 하나씩의 날개를 가진 영락없는 옛 부채 모양이다. 가을에 맺히기 시작하는 열매는 꽃 피는 봄까지 남아 있어서 하얀 꽃이 피어날 때에 꽃 사이에서 부채꼴의 열매까지 함께 찾아 볼 수 있다.

미선나무도 개나리와 마찬가지로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식물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대표적 특산식물이자 희귀식물이다.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귀중한 식물인데, 안타깝게도 갈수록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식물 2급으로 지정해 특별히 보호하고는 있지만, 자생지는 차츰 줄어드는 추세다.

미선나무는 웬만한 꽃샘추위쯤은 너끈히 이겨낼 만큼 생명력이 강하지만, 깊은 숲에서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서는 자라지 못한다. 그런 탓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어려운 자갈밭이나 바위가 많은 곳에 무리를 이뤄 자라는 게 대부분이다.

미선나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 때에 충북 진천 초평면 용정리의 자생 군락지에서였다. 이 곳은 한때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해 보호했지만 무분별한 채취와 관리소홀로 1960년대에 이미 미선나무를 볼 수 없게 됐다. 최근 진천 지역에서 또 다른 미선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기도 했다.

진천 외에 충북 괴산의 세 곳을 비롯해 충북 영동과 전북 부안에서도 미선나무 군락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군락지에서 개체 수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안타까움도 늘어난다. 새로운 자생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몇몇 연구자들의 인공증식 노력이 성공하고 있어 다행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