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베이비부머

입력 2010-04-12 17:51

“옛날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귀여운/ 남자 아이와/ 참 사이가 좋았다.”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1964)’ 첫 페이지는 그렇게 시작한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에 시구(詩句)를 연상시키는 짤막한 글이 아주 인상적이다. 원래는 아동용이었지만 성인 동화로도 손색이 없다.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어 긴 설명이 필요없다. 소년에게, 아니 그가 성인이 되고 힘없는 노인이 될 때까지 사과나무는 끊임없이 주고 또 준다. 배를 만들겠다는 그에게 자신을 베어가라고 권하고, 끝내는 나무등걸까지도 내어준다.

번역판 제목의 ‘아낌없이’란 말이 퍽 잘 어울린다. 독법(讀法)도 여러 가지다. 부모의 자식 사랑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고, 주고 또 주는 나무를 안쓰러워하는 이도 있다. 끊임없이 달라고 보채는 소년의 태도를 탓하는 마음도 있지 싶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베이비부머 1955∼1963년생들의 특징을 보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났다. 이들의 열에 일곱은 연금이 없는 부모세대를 봉양하고 있다. 자녀 교육비도 당연히 책임진다. 또 열에 아홉은 자녀 결혼비용까지도 부담하겠단다. 정작 자신들은 원했던 것만큼 배우지도,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노후 대비는 얼마 되지 않는 국민연금이 고작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안쓰럽다.

이들은 한국전쟁 직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출생률이 급격히 증가할 때 태어난 세대다. 712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게 그 어떤 배려도 하지 않는다.

일본의 베이비부머는 1947∼1949년생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은퇴 개시시기를 ‘2007년 문제’로 명명하고 고령자고용안정법을 2006년부터 개정, 65세까지 고용 연장을 도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자연히 이들의 노후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주는 데 열심이다. 지난 1년 동안 사회복지단체 등에 후원금을 낸 사람은 베이비부머의 40.9%로 15세 이상 인구의 기부 비율 32.3%보다 높다.

준다는 것은 넘쳐흐르는 생명의 충실감을 뜻한다. 부모자식 간, 친구 사이, 이웃들끼리 주고 또 주는 행위는 하나님의 인간 사랑처럼 가슴을 울린다. 우리 사회가 베이비부머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은 정말 없는 걸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