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대통령 결선투표제 검토할 만하다

입력 2010-04-12 17:57


“전체 유권자 대비 30%대 득표율로는 국민적 대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3765만3518명과 1149만2389명.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총 유권자 수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득표수다.



이 대통령은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48.5%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렇듯 전체 선거인수를 기준으로 할 때의 득표율은 30.52%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는 이 대통령이 2위인 민주당 정동영 후보보다 무려 531만여 표를 더 얻었다는 사실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의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노무현 34.33%, 김대중 31.97%, 김영삼 33.91%, 노태우 32.01%이다. 16대 대선에서 57만여 표 차이로 패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경우 32.7%였다.

새삼스레 이런 통계를 꺼낸 것은 현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퇴진하라’는 요구에 직면한 데 이어 대운하 공약이 폐기되고, 4대강과 세종시 등 국책사업들이 매끄럽게 추진되지 못하는 현실과 연관돼 있다.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이 대통령의 낮은 득표율이 공약과 대규모 정책 이행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유사한 사례들은 과거에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유효득표의 36%를 얻은 뒤 임기 내내 중간평가하자는 공세에 시달렸다. 2등(김영삼)과 3등(김대중)의 득표율 합계에 비해 20% 포인트 가까이 낮아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일면서 정통성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국회의 탄핵을 받은 데에도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는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해도 최고 득표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선거방식에 기인한다. 하지만 단순다득표제는 현재와 과거의 예에서 보듯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국민 전체의사를 대변한다고 자부할 수 없다. 대선 공약을 실천하면서도 국민들 눈치를 봐야 한다. 정국 불안은 만성이 됐고,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마저 자리 잡았다.

단순다득표제를 지속할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대선 투표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어 더욱 그렇다. 1987년 89.2%였던 투표율은 81.9%(14대), 80.7%(15대), 70.8%(16대), 62.9%(17대)로 다섯 차례 대선을 겪으면서 26.3% 포인트나 떨어졌다. 낮은 투표율은 선출된 권력의 국민적 대표성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17대 대선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가 당선자 득표수를 앞지른 현상이 처음 나타난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차 투표에서 1위가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하면 1, 2위끼리 재투표하는 제도다. 결선 투표에서는 두 사람이 대결하는 만큼 당선자가 유효표의 과반수를 얻을 확률이 거의 100%다. 프랑스와 브라질 폴란드 등 여러 나라가 이러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가뜩이나 선거가 잦아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대통령을 뽑기 위해 선거를 두 번이나 치러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사람이 문제이지, 제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1차 때보다 결선 투표율이 낮고, 1위와 2위가 뒤바뀔 경우 과연 당선자의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민의를 보다 충실히 반영하고,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을 보다 확고하게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두 차례 선거를 치르는 만큼 국민들이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공약 등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 직후 개헌 논의에 착수하자고 야당에 제안한 만큼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에서 개헌 문제가 다뤄질 것 같다. 이때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대통령과 국가의 불행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