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골프 마스터스 우승 필 미켈슨의 가족 사랑 “암 투병 고통과 싸워준 아내가 자랑스러워요”
입력 2010-04-12 18:50
올해 마스터스 골프 대회는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 감동의 무대로 막을 내렸다. 최경주(40)는 공동 4위, 앤서니 김(25)은 3위로 선전했다. 타이거 우즈(공동 4위)는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필 미켈슨, 눈물의 우승 세리머니=최종 합계 16언더파로 우승한 미켈슨(40·미국)이 12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7436야드) 18번홀에서 마지막 챔피언 퍼팅을 성공시킨 뒤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아내(에이미 미켈슨)였다.
이날 미켈슨의 아내는 지난해 5월 유방암 판정을 받은 이후 11개월 만에 처음 코스로 나와 남편의 경기 모습을 지켜봤다. 챔피언 미켈슨은 18번홀 그린 주변에 서 있던 아내에게 다가간 뒤 세상의 반쪽을 꼭 껴안았다. 가족의 고통(암 투병)과 기쁨(마스터스 우승)을 함께 나누는 눈물의 포옹이 한동안 이어졌다.
두 사람의 포옹이 길어지자 함께 스코어카드를 내야 하는 2위 리 웨스트우드(13언더파·잉글랜드)는 뒤에서 소리 없이 미켈슨을 기다렸다. 마스터스 챔피언에게 주는 그린 자켓을 입기 위해서는 경기 종료 최종 절차인 스코어카드부터 제출해야 하지만 미켈슨에겐 아내를 안아주고 위로하는 일이 먼저였다. 아내의 유방암 판정 두 달 뒤 어머니(메리 미켈슨)까지 유방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고 대회 출전 대신 가족의 병간호를 선택했던 미켈슨이었다.
미켈슨은 아내 바로 옆에 있던 두 딸 앞에서 눈가를 한 번 훔친 뒤 스코어카드를 내러 갔다. 버디와 이글만이 최고로 추앙받는 골프 대회장에서 벌어진 뭉클한 장면에 갤러리들도 박수를 보냈다.
미켈슨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그동안 고통과 싸워준 아내가 자랑스럽다. 오늘 나의 우승도 그동안 우리 부부가 함께 이겨내온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켈슨은 아내 몸 속에 있던 암 세포의 고통 뿐 아니라 세계 최고 대회 마스터스 우승 기쁨도 가족과 함께 나눴다.
◇코리언 브라더스, 역대 마스터스 최고 성적=앤서니 김(12언더파), 최경주(11언더파), 양용은(38·7언더파·공동 8위) 3명이 톱10에 들었다.
지금까지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가 마스터스 톱10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04년 최경주(3위)가 유일했다. 한국 남자 골프는 지난해 양용은의 아시아인 첫 메이저 대회(PGA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마스터스 챔피언 등극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런 점에서 최경주의 13번홀 세컨샷은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으로 남게 됐다. 최경주는 후반 첫 홀인 10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미켈슨과 함께 공동 선두까지 치고 올라갔다. 최경주의 날카롭고 안정된 샷과 정확한 퍼팅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의 마스터스 우승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최경주는 13번홀(파5)에서 티샷을 잘 보낸 뒤 세컨샷으로 투 온을 시도했다. 투 온이 될 경우 잘하면 이글, 최소한 버디는 잡아 단독 선두로 남은 홀을 여유있게 리드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경주의 세컨샷은 그린 왼쪽 벙커로 빠졌다. 홀까지 심한 내리막 경사를 의식한 최경주의 세 번째 벙커샷 역시 홀과는 거리가 먼 그린 입구에 떨어졌다. 최경주는 세 차례 퍼트를 하면서 결국 이 홀을 보기로 마무리했고, 마스터스 우승의 꿈을 나중으로 미뤘다. 앤서니 김은 후반 13∼16번홀에서 이글 1개, 버디 3개를 기록했으나 역전 우승까지 노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골프황제 우즈의 연착륙=지난해 말 섹스 스캔들 뒤 5개월 만에 복귀한 우즈는 공동 4위(11언더파)에 그쳤으나 골프황제 위용은 잃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이글만 4개 잡아냈고, 1∼4라운드 내내 톱5 주변에 머무르며 우승컵을 포기하지 않았다.
외신들은 “우즈가 복귀전치고는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즈는 미켈슨과 비교되는 문란한 사생활에 대한 비판 여론을 딛고 향후 투어 생활을 순조롭게 이어나갈 자신감을 얻었다. 우즈의 성공적인 컴백은 세계 남자 골프 흥행에도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보인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