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영적 현장주의자가 되자
입력 2010-04-12 17:24
누가복음 5장 12∼16절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당시에 나병, 즉 한센병은 불치병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렸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절망이 일상화된 이 나병 환자에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만지셨습니다. “깨끗함을 받으라”는 주님의 선언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환자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은 그것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용한 의원’으로만 존재하는 분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대단한 의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요? 예수님의 정체성은 결코 ‘능력 많은 의사’로 한정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나 본질은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탄의 세상이 되어 버린 이 세상을 대명천지로 바꾸어가고 계십니다. 사탄의 세상을 빼앗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개인의 병을 고치는 의미보다는 이러한 의미가 훨씬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소원과 하늘의 계획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도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신 다음 그 이야기가 퍼지지 않게 경계하셨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사장에게 가서는 “이 된 일을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 상황으로 들어가 봅시다. 심각한 나병에 걸렸던 그가 젖먹이 같은 피부를 하고 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제사장은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병은 불치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가 우윳빛 피부의 사람으로 변한 현실 앞에서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묻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나았니?” 제사장은 나병 환자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과 존재에 대해서 정확하게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폭탄을 그들 안에 보내어 폭발시키셨습니다. 그때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치유뿐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사탄에게 빼앗긴 생명을 되찾으려는 주님의 진정한 의도는 저급한 인간들의 반응 때문에 파묻히고만 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저질 군중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오해했습니다. 자기 병이 낫는 것을 복음으로 착각했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달려온 군중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광야로 도망치셨습니다.
온몸이 악창으로 뒤덮인 나병 환자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는 ‘치유 불가’ 혹은 ‘접근 불가’라는 팻말이 붙여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이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은 고칠 수 없다,’ ‘세상으로 가면 오염된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가급적 담을 쌓고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을 경건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현장주의자로 일하셨습니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나병 환자를 현장으로 찾아가 만지시고 고치셨습니다.
우리 역시 현장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 열방에서 복음을 든 현장주의자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개인 구원을 뛰어넘어 우주적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민걸 교회다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