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7) “없어선 안되는 걸레의 삶을 살아라”
입력 2010-04-12 17:21
“걸레 같은 삶을 살아라.”
생전 시아버지인 손정도 목사님이 남편 손원일 제독에게 강조하신 말씀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일일이 따를 수 없어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남편은 유독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존경했다. 특히 그분이 해주신 세 가지 말씀을 마음속에 단단히 새겼다.
첫째, 손 목사님은 걸레의 삶을 강조하셨다. “비단옷은 입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되므로 없어서는 안 된다. 나는 걸레와 같은 삶을 택해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도우며 살겠다.” 목사님은 보이는 곳에서 칭송받는 ‘비단옷’ 같은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걸레’ 같은 삶을 강조하신 것이다. 실제로 손 목사님은 그렇게 살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한다.”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손 목사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이리라. 목사님은 신앙과 애국운동의 균형을 이룬 삶을 사셨다. 셋째,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되라.” 목사님은 “언젠가 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럼 그때는 과학사회, 산업사회가 될 것이니 각 분야에서 최고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중국 중앙국립대학 항해과를 통해 훗날 해군 창설의 꿈을 키우게 됐고,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되었으니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해군 분야의 최고 실력자가 된 셈이다.
손 목사님이 가르쳐주신 세 가지 교훈은 오늘날 우리 세대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지만 희생하고 섬기는 삶,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임에 틀림없다.
남편은 상하이에서 처음 해군을 보았다고 한다. 수많은 외항선과 군함이 부두에 정착해 있어 그는 많은 배와 바다 사람들을 자연스레 볼 수 있었다. 특히 제복을 입은 늠름한 해군을 보면서 “바다에 미래가 있다. 지금은 남에게 빼앗긴 나라지만 언젠가 독립의 그날이 오면 우리도 해양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해군이 되는 길을 수소문했지만 외국인으로서 중국 해군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다와 항해술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하고, 중앙국립대학에 들어갔다. 실제로 그곳에서 배운 과정들이 훗날 우리나라 해군 창설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항해과 3학년을 마치자 1년 동안 해상 실습을 위해 남편은 배를 타게 됐다. 실습이 끝날 무렵, 중국 해군에서는 해외에 파견할 항해사를 선발하고 있었다. 남편은 주저하지 않고 응시했고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 다섯 명의 합격자 명단에 끼이게 되었다.
그는 중국 해군이 배정해준 대로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미국 라인의 상선을 타게 됐다. 항로는 함부르크, 지중해, 수에즈 운하, 인도양, 싱가포르, 요코하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치는 길이었다. 선장을 비롯한 승선원이 모두 독일인이었기에 남편은 영어 중국어 외에 독일어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그 후 1만5000t급 람세스함으로 옮긴 남편은 인도양을 횡단하던 중 아버지 손 목사님의 부음을 듣게 된 것이다. 그렇게 원양 항해사 생활을 3년간 했고, 나와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들어오기까지 2년간 더 연안여객 화물선의 항해사 겸 부선장으로서 배의 살림살이와 사무를 맡아 처리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