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52)

입력 2010-04-12 13:18

'교회'와 '세상'

‘엠마오 가는 길’이라는 영성훈련 프로그램 하나가 종료되었습니다. 굳이 ‘종료’라는 맛없는 단어를 골라서 쓰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훈련이 4일째 되던 날, 40여명의 남자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가졌던 간증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백을 경청하면서 흐르는 눈물과 함께 자꾸만 ‘종료’라는 언어가 생각나는 거였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을 맞은 이 시간까지 ‘終了’라는 단어는 나를 떠나지 않고 점점 명료하게 전광판의 빨간 숫자처럼 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사람에겐 오직 두 가지 의식 상태만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부재입니다. 간혹 내가 즐겨 쓰는 말이긴 합니다만,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들어 있는 상태라고 해도 됩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종교적인 상태'와 '비종교적인 상태'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의 ‘상태(常態)’ 만 말하는 것입니다.

의식은 다시 두 가지 ‘형태(形態)’를 갖습니다. 우리가 흔히 ‘세상’ ‘세상’ 하는 그 ‘세상(世上)’이란 <사랑이 없는 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그것이 <세상>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 밖을 그렇게 말합니다만, 그것은 아주 틀린 말입니다. 여기서 <교회 밖>이라는 것은 <사랑 없는 의식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 찰 때, 그 때 지금까지 세상으로 보이던 것이 갑자기, 일순간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실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눈으로 경험하는 것이 세상이고, 사랑이 가득 찬 눈으로 경험하는 것이 신성 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눈, 사랑의 눈 갖는 것을 회피하거나 그 선택의 언저리에서 계속 세상이 보이는 사람들, 세상으로 간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존재는 이미 사랑에서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