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골프(51)
입력 2010-04-12 13:12
명상가에게서 배우는 집중보다 통찰
“골프에는 집중보다 통찰이 요구됩니다. 생각이 오고 가면 그 생각들을 오고 가게 내버려두고 그냥 무심히 관찰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고통이 오면 집착하고 고민하고 긁고 문지르고 하는 평소 습관적 동작들을 모두 중단하고 무심히 주위를 바라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골프 친구인 명상가 최 사장이 쓴 글의 일부이다.
한 타에 20초씩 프리샷 루틴을 하고 한 라운드에 90타를 친다면, 실제로 골퍼에게 라운드당 꼭 필요한 집중의 시간은 30분이면 족하다. 그렇지만 그 시간도 끊임없이 집중하는 게 매우 힘들다. 나는 골프에 입문한 후 처음 10여년 동안 라운드마다 샷에 얼마나 집중하였던지, 라운드를 마치고 나면 아무 것도 본 기억이 없었다. 아름다운 꽃도, 하늘 위의 뭉게구름도, 지저귀는 새 소리도, 심지어는 캐디의 얼굴조차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오로지 스윙과 퍼팅 그리고 전략에만 몰입했었다. 어느 날 골프장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가 “그 골프장 참 멋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좋았어요?”라고 묻는데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나는 “무엇 때문에 골프를 치나?”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나는 집중을 잘 하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또 내가 집중하면 남들이 “정말 무섭게 집중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의 무개념 에티켓이나 실수로 집중이 깨지면 잘 수습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늘 사방을 경계하는 속성이 있었고 아직도 잘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퍼트 라인에 누가 서 있으면 “내가 어드레스 후 스트로크할 때 이 사람이 움직이면 어떡하지?” “다음에 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퍼팅 라인을 비워달라고 조용히 부탁해 볼까?”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지난 주말에 첫 홀 러프에서 볼을 찾지 못한 후 흔들렸던 마음을 겨우 잘 추스리던 중, 4번 홀에서 버디 퍼팅을 할 때 맞은 편에서 움직였던 캐디의 실수로 집중을 잃어 짧은 거리에서 쓰리퍼트를 했고 중반전까지 흐름을 회복하지 못해서 최근 10년래 최악의 스코어로 좌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오래 전 최경주 선수는 샷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샷 동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골프나 전략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거나 음미하면서 걷는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필요할 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근육의 긴장 이완은 물론, 생각의 집중도 적절한 이완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 뜻에서 나는 명상가 최 사장의 ‘집중보다는 통찰’이라는 말에 동감하며 그와의 라운드를 떠올리곤 한다.
난이도가 높은 M골프장 E코스 10번 홀에서 최 사장의 티샷은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하였고, 핀까지는 90미터가 남았다. 플레이 중인 페어웨이에 잔디 깎는 차량이 동시에 두 대가 들어오자 동반자들이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였다. 회원인 그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고, 마음이 불편해서였는지 그의 세컨드 샷은 조금 짧아 온그린에 실패했다. 그의 실력으로 무난히 파를 세이브할 수 있는 지점이었지만 어프로치가 또 짧아서 4온을 시키는 불상사가 생겼다. 티샷을 잘 쳐 놓고 터무니없는 실수를 해서 망가지면 흔히 경기 흐름을 잃고 쓰러지게 마련인데, 최 사장은 대체로 마음의 편안함을 잘 유지하는 편이다. 그가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고 다음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어드레스에 들어갔을 때, 동반자가 실수로 농담을 했다. “지난 홀에서 일부러 봐 준거 아뇨?” 내가 “앗, 지금은 어드레스에 들어가서 말을 걸 타이밍이 아닌데”라고 생각한 순간, 최 사장이 어드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어! 경치 좋다”였다. 최 사장이 뜬금없이 경치 좋다고 한 것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을 잊고자 주변의 동양화 같은 산세와 경치를 음미한 것이다. 물론 그 후 최 사장의 티샷은 페어웨이 중앙을 멋지게 갈랐다. “오면 그냥 가게 내버려 둡니다”라는 말처럼 “어! 경치 좋다”는 말로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버린 것을 보며 명상가로부터 한 수를 잘 배웠던 것이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지혜를 찾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눈은 땅끝에 있다”(잠 17:24 우리말 성경)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