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초교 아이들의 ‘천안함 악몽’… 정신적 상처에 심리치료 나서

입력 2010-04-11 19:43


천안함 침몰 사고는 해군 자녀들에게도 정신적 충격을 주고 있다. 사고를 겪은 해군 자녀들은 평소 하지 않던 예민한 행동을 하거나 걱정과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직접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 소속 해군 장병 자녀들도 자신의 아버지가 유사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악몽을 꾸거나 불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적 충격이 표출될 수 있어 세밀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정초등학교 심리치료 시작=제2함대사령부 해군 자녀들이 76%에 달하는 평택 원정초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실시할 방침이다. 백성욱 교감은 11일 “우선 교사들이 아동 심리치료에 관한 교육을 받을 예정”이라며 “사고를 겪은 특정 아동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치료 대상”이라고 밝혔다. 위기 학생을 상담·치료하는 평택 위센터 소속 최우림 임상심리사 등 2명은 12일부터 원정초교에서 교사 연수를 시작한다.

원정초교의 이 같은 결정은 해군 자녀들이 천안함 침몰 사고를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3시10분쯤 해군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주모(10)군은 “사고 이후 아빠가 탄 배가 침몰하는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안모(10)군도 “악몽을 꾼 적이 있으며, 평소 일부러 사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를 겪은 해군 자녀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고 김태석 상사의 첫째딸 해나(8)는 사고 후 담임교사의 손을 잡거나 안기는 일이 부쩍 많아졌고,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병문안을 갔던 이웃 주민 A씨는 “해나가 병원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울기만 했다”며 “크게 울면 마음이라도 시원할 텐데 어린애가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울음을 속으로 삼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전했다.

◇아버지 그림 그리며 불안 달래는 아이들=고 김 상사의 둘째딸 해강(7)이는 아버지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일기장이나 그림으로 아빠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아빠의 구조를 원하는 간절하고도 다급한 심정이 그림에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해강이의 그림을 본 오종은 제이 예술치료센터 소장은 “아이는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내면 한 구석에서는 아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다”고 했다. 해강이의 그림 속에서 수면 위에 떠 있는 배와 달리 바다에 잠겨 있는 천안함에만 십자가가 표시된 것, 해저의 세 사람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모습, 머리에 칠해진 검은 그림자 등이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해강이의 그림에는 자신의 불안감을 표출하듯 필체가 강했다. 오현숙 한서대 아동미술학과 교수는 “몇 번에 걸쳐 색칠을 하고, 종이가 많이 헌 것으로 볼 때 아이가 불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울고 있는 해강이의 얼굴만 그린 것에 대해서는 “구조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자신의 몸은 그리지 않고 얼굴만 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유리 기자, 평택=최승욱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