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새 대법관 지명 ‘샅바싸움’

입력 2010-04-11 20:16

미국에서 대법원 판결은 정치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하다. 대법관 개개인의 성향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척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지난 9일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사임 의사를 밝히자마자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사이에서는 이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90세를 며칠 앞둔 스티븐스 대법관은 대법원 내 최고령자로, 진보적 성향의 소유자다.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공화당)이 임명했으나 사형제와 낙태, 소수인종 문제 등 미국 내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민감한 이슈 관련 판결에서 점차 진보적 색깔을 나타냈다. 그래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미 대법원은 9명의 종신 대법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구도는 보수 대 진보 성향이 5대 4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진보적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임명했었다. 당시에는 전임자가 여성 대법관인 데다 사상 첫 히스패닉계로 지명됐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찬성했으며, 무엇보다 상원에서 민주당이 이른바 ‘슈퍼 60석’을 확보하고 있어 상원 인준이 비교적 쉬웠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건강보험 개혁안 처리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보수와 진보가 너무 등을 졌다. 게다가 정치 구도가 뒤바뀌었다. 슈퍼 60석은 깨졌고, 진보적 대법관을 지명할 경우 공화당은 똘똘 뭉쳐 반대할 것이다. 상원 인준이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진보적 그룹이나 노조, 낙태 지지 단체들은 벌써부터 진보적 색채가 확실한 사람을 지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민주당 상원 의원들은 이념 색채가 강한 대법관보다 초당적이고 양당에서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중도적 인물을 지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가급적 덜 영향을 미치도록 신속한 인준을 희망하고 있다. 그 같은 후보군에는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을 지낸 엘리나 케이건(49) 법무부 송무담당차관, 머릭 갈랜드(57) 연방항소법원 판사 등이 있다고 ABC방송은 10일 전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